증권사와 은행이 양도성예금(CD) 금리 조작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부당이득 반환 요구와 함께 집단소송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공정위가 금융회사들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하자 제발이 저린 한 금융회사가 금리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자지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17일 시중 10개 증권사에 현장 조사에 이어 18일에는 시중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증권사에서 은행으로 조사가 확대되며 전 금융권으로 조사가 전면적으로 확대되자 담합사실이 들통날 것에 대비해 발빠르게 자백한 것이다.

자진신고를 한 것은 리니언시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공정위는 가장 먼저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하는 경우 과징금을 전액 면제해준다.

이에따라 공정위 주변에서는 조사를 받고있는 은행과 증권사 한두곳이 자진신고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은 공정위가 조사를 완료한 국민주택채권 매입가격 담합 적발과 관련된 과징금 부과 조치를 앞두고 있다. CD금리와 국민주택채권 매입가격 담합으로 2개의 과징금을 맞을 처지에 놓인 금융회사들이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 철퇴를 피하기 위해 손을 썼다는 관측이 많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진신고 사실 확인과 관련해 “시인도 부인도 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그동안의 담합 조사들에서 공정위가 밝혀온 태도를 보면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시디금리 담합 건과 별개로 다음달 국민주택채권 매입가격 짬짜미 혐의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상황에 처한 금융회사가 두가지 과징금을 모두 감면받기 위해 시디금리 담합을 자백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시디금리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거센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디금리가 가계대출은 물론 각종 파생상품의 기준금리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금융질서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디금리에 연동된 대출은 전체의 30%인 324조원에 이르고, 파생금융상품 규모는 4624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가구 10곳 가운데 7곳(69%)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있고, 대출자도 1000만명을 넘는다.

CD금리 짬짜미(담합)의 피해자는 대출자이고 수혜자는 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특히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금융기관의 배를 불린 ‘금융권의 탐욕’에 대한 비난이 고조될 수 밖에 없다.

CD금리를 0.1%포인트만 높게 유지해도 가계가 한해 은행권이 추가로 가져가는 부당이득만 2780억원이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예대마진을 통해 얻은 이자수익은 39조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직장인 권아무개씨는 “은행에서 매달 내야 할 이자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는데, 이자가 내려가는 경우는 없었다”며 “1998년 외환위기 때 세금을 쏟아부어 살려준 은행들이 금리를 조작해 대출이자를 많이 받았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시장 혼란도 불가피하다. 파생금융상품 가격 결정의 밑바닥에도 CD금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CD금리 조작은 수천조원에 이르는 금융상품의 거래가 왜곡된 가격으로 체결됐음을 뜻한다.

영국의 리보금리 조작 사건 이후, 손해를 본 투자자가 은행과 증권사들을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한 것처럼, 이번 사건도 이와 유사한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으로서는 신뢰 붕괴는 물론, 대규모 집단소송과 과징금, 임원들에 대한 처벌까지 각오할 수밖에 없다.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은 이 사건으로 4억5000만달러(약 51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고위 임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을 향한 분노가 상환능력을 넘는 약탈적 대출과 고위 경영진에 대한 고액 보너스 지급 같은 문제였다면, 금리 조작은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사안으로,  금융기관들은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소비자단체들은 금리 조작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즉각 소송에 나설 태세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CD금리가 조작되고 담합했다면 이는 금융사들이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은 것”이라며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금융사들이 모른체한다면 집단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CD금리가 지난 5년간 0.1%만 조작됐다고 가정해도 금융회사의 부당이득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CD금리에는 근저당 설정비 반환 소송과 마찬가지로 워낙 많은 금융소비자가 걸려 있어 역대 최대 규모 소송이 될 전망이다.

금융감독기관은 또다시 감독 실패 책임론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날도 “아직까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고,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혹시라도 책임론이 불거질까 우려하면서 공정위의 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저축은행 사태처럼 ‘업계와 유착해 눈감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침통한 기류마저 형성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그동안 CD금리의 문제점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권한싸움 탓에 개선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CD금리를 대체할 단기 지표금리 개발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고 나섰지만, 금융위는 자신들의 권한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금융위가 뒤늦게 다시 TF팀을 꾸렸지만 결국 뒷북 대응이 되고 말았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날 TF를 열어 당분간 CD 발행을 의무화하고 중장기적으로 CD금리를 대체할 지표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