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소유의 4조 4000억원대의 차명계좌에 대해 금융당국이 고율과세 방침을 밝힌 가운데 불법으로 간주되는 차명계좌 개설을 최초로 개설한 곳은 신한증권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한증권은 금융실명제법이 마련되기도 전에 개설했다.

또 차명계좌 대부분의 차명계좌는 삼성증권과 우리증권이 동원됐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2008년 삼성 특검(조준웅 특검) 당시 드러났지만 구체적인 계좌실태는 이번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삼성은 실명 전환과 함께 세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관심이 낮아지자 삼성 측은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은 채 돈을 모두 인출해 간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5조에 따르면 실명이 아닌 비실명재산에 대해 계좌 개설일 이후 발생한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90%(지방세 포함 시 99%)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도 주인이 있는 것이기에 금융실명제법상 과세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해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뻔했다.

비판여론이 일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0일 국정감사에서 조건을 충족하는 차명계좌의 경우에는 해당 계좌에 든 금융재산에 한해 비실명재산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30일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 인천 연수구갑)은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이 발견한 1199개의 이건희 차명계좌중 1021개 계좌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연도별·금융회사별 제재 내역 매트릭스(matrix)를 단독 입수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상의 실명확인 의무를 위반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계좌는 총 10개 금융회사(은행3, 증권회사 7)에 걸쳐 1021개 계좌에 달했다.

이들 계좌중 20개 계좌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계좌는 1987년 신한증권에 개설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1001개 계좌는 모두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 개설됐다.

금융기관별로는 은행 계좌 64개, 증권계좌 957개였다. 은행 계좌는 대부분 우리은행 계좌였고(64개중 53개, 점유율은 약 83%), 증권 계좌는 대부분 삼성증권에 개설(957개중 756개, 점유율은 약 79%)됐다. 우리은행은 삼성그룹의 주거래은행으로 최순실 특검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차명계좌가 유지됐던 금융회사들은 우리은행(53), 하나은행(10), 신한은행(1) 등 은행과 삼성증권(756), 신한증권(76), 한국투자(65), 대우증권(19), 한양증권(19), 한화증권(16), 하이투자증권(6) 등 증권회사였다. 이중 삼성증권은 전체 1021계좌중 756계좌를 보유하고 있어 74%의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서 주목할 점은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된 계좌는 20개로 모두 증권회사에 개설된 증권 계좌라는 점이다. 신한증권(9), 한국투자(7) 계좌는 금융실명제 시행일(1993.8.13.) 이전에 개설됐고 삼성증권의 경우 93년도에 개설된 6개 계좌중 4개가 실명제 이전 계좌들이다.

금융실명법 상의 비밀보장 조항 때문에 2008년 당시 이 계좌들의 잔액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들 계좌는 실명제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이므로 고율(90%)의 소득세 차등과세에 더해 실명제 실시일 기준 재산가액의 50%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은 2003년을 경계로 그 이전에는 삼성증권을 주된 차명주식 은닉회사로 활용하되 다른 6개 증권회사들도 돌아가면서 조금씩 활용했는데 2004년부터는 삼성증권에만 차명주식을 집중해 은닉힌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4년의 경우 삼성증권의 차명계좌 개설 실적이 141개로 전체 위반계좌(1021개)의 13.8%, 삼성증권에 개설된 총 차명계좌(756개)의 18.7%에 달했다. 따라서 이건희 차명재산중 삼성생명 차명주식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삼성증권내의 어떤 증권 계좌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박 의원의 지적이다.

이들 1021계좌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제재대상이 된 것은 ‘실명확인의무 위반’이었다. 금융실명법상 실명 확인은 계좌의 명의와 거래자의 주민등록증을 대조해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확인되지 않은 거래는 실지명의에 의한 거래가 될 수 없고 계좌의 개설 시점에서 이런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계좌는 명의자와 실 소유주가 일치하는가 하는 차명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실명 확인 자체가 되지 않은 비실명 계좌가 된다.

박 의원은 “결국 이건희 차명계좌는 계좌의 개설이나 거래 시에 본인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비실명계좌'일 뿐만 아니라 서류상의 명의인과 실제 소유주가 일치하지 않은 '차명계좌'의 성격까지 가진 그야말로 위법으로 점철된 계좌들”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실명법 제5조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서는 그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90%의 세율로 소득세를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실명법 부칙 제6조 및 제7조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한 90%의 소득세 차등과세는 물론이고 추가로 금융실명제 실시일 당시의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박 의원은 2004년도 이후에 개설된 증권 계좌의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의 ‘명의신탁재산의 증여 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 부과 가능성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증세법 제45조의2 제1항은 주식처럼 등기나 명의개서가 필요한 재산의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에는 명의자가 마치 그 재산을 실제 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의제해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자신이 소유한 주식을 타인의 명의로 등기해 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포탈하려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2003년에 신설돼 2004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조항으로 이 때 증여의제일은 ‘소유권취득일이 속하는 해의 다음해 말일의 다음 날’로 정해져 있다.

박 의원은 “위 규정을 이건희 차명주식 경우에 대응하면 2004년 이후 삼성증권 등에 개설된 증권계좌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소유권취득일이 2001년에 있었던 경우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기준일은 2001년의 다음해 말일의 다음날인 2003년 1월 1일이 되는데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 증여세 부과는 최장 15년까지 가능하므로 올해 말일까지 증여세 부과가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해당하는 계좌는 삼성증권의 315개를 포함해 총 316개에 달한다. 그런데 이건희 차명계좌의 경우 소득세의 차등과세나 과징금 징수 또는 증여 의제를 적용한 증여세 부과 등이 전혀 없었다.

박찬대 의원은 "이번에 확보한 이건희 차명계좌의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한 연도별·금융회사별 현황 자료는 이건희 차명재산의 은닉이 금융회사를 악용해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이뤄져 왔는지를 잘 보여준 구체적 증거"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