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정부가 미국 정부의 주요 기밀정보 등을 폭로해온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1)의 망명을 허용했다.

리카르도 파티노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우리 외교 공관에서 망명을 요청한 이들을 보호하는 전통에 충실한 에콰도르 정부는 어산지에게 망명을 허용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파티노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영국과 스웨덴, 미국이 어산지가 비밀 외교문건을 누출한 미국으로 송환돼 법정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하지 못한 뒤로 에콰도르 정부는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며 "망명 허용이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파티노 장관은 "그가 미국으로 송환된다면 어산지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군사 법원이나 특별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가 잔인하고 모멸적인 처우를 받으며 사형이나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믿기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어산지는 2010년 스웨덴에서 위키리크스를 지지하는 여성 2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스웨덴에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지난 6월19일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요청했다.

어산지는 스웨덴으로 송환될 경우 미국으로 재송환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스웨덴의 송환 요청이 미국 정보 당국에 의해 기획된 작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어산지는 에콰도르 정부의 결정 직후 대사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내 자신과 나의 사람들에게 있어 중대한 승리"라면서도 "상황이 보다 어려워 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에콰도르 정부의 망명허용으로 영국 등 친미 성향의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도 예상된다.
영국은 최근 에콰도르 정부의 결정이 임박해지자 치외법권 지역인 에콰도르 대사관까지 진입해 어산지를 강제 체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에콰도르 정부의 기자회견 뒤 "실망스런 결정"이라며 영국 정부는 어산지를 스웨덴에 송환해야 한다는 법적 구속력 있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도 에콰도르 정부 결정에 유감을 나타내며 어산지가 에콰도르로 가기 위한 출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웨덴도 에콰도르 정부가 망명 결정의 주요 배경으로 든 '불공정 재판'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카를 빌트 스웨덴 외교부장관은 "우리의 확고한 법 시스템은 개인과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비난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스웨덴 정부는 이날 스웨덴 주재 에콰도르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미국은 에콰도르 정부가 망명허용 결정을 내리면서 근거로 든 어산지의 '정치적 박해'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에게 "미국이 어산지를 박해하려고 한다는 주장을 전면 거부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영국에 어산지를 체포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진실이라고 볼 어떤 정보도 없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