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으로 청ㆍ일상 등 외국상인이 서울시장에 침투하면서 서울시장의 상권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외국상인의 상권침탈은 종래 유통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전통상인에게 대응과 종속을 강요했다.

이에 시전상인을 중심으로 하여 외국상인의 점포철수를 요구하는 동맹철시를 하기도 했다. 세곡운송 등을 통하여 성장한 경강상인들 또한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상권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일본기선의 세곡운송으로 말미암아 타격을 입고 있었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었으며, 1890년대 이후에는 조선 최대의 곡물수출항으로 등장하였다. 인천항이 곡물수출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서울의 미곡시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갔으며, 서울과 인천항 간에 유통 주도권을 둘러싼 상권대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권 경합 속에서 서울의 미가는 등귀하고 쌀 부족현상이 심화되었다.

정부는 서울의 곡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만석동회선령(萬石洞廻船令)’을 발동하고, 방곡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일본측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중국ㆍ일본ㆍ안남미를 수입하여 충당했다. 곡식 이외에 다른 상품의 물가 또한 폭등했는데, 이는 당오전과 같은 악화남발의 영향이 컸다. 쌀값을 비롯한 물가상승은 서울지역 도시 임노동계층의 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였다.

대한제국의 전통공간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 전략은 ‘문명개화’ 전략과는 표리부동한 모순성을 띤 것이었다. 이러한 공간전략의 모순성은 대한제국이 ‘황제권’의 확보에 집착함으로써 ‘민권’의 신장을 정치적·제도적으로 억압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 전제군주국에서 ‘근대’ 입헌군주국으로의 전환의 과도기적 단계에서 대한제국이 드러낸 이행전략의 혼선은 근대 주체 생산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과 직결된다.

근대국가가 ‘근대 주체’로서의 ‘국민’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신민(臣民)’에 대한 (강제적) 통제 전략을 아래로부터의 ‘시민(市民)’을 위한 (자발적) 참여 전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서구에서 근대도시와 시민사회는 바로 이러한 통치성의 질적 전환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미약한 전통권력의 독주와 상공인세력의 미발달로 인해 이러한 변화를 꾀할 사회적 동력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1897년 새롭게 출범한 대한제국의 수도 황성은 500년 왕조수도이자 폐쇄적 성곽도시 한성의 역사적 유산을 안고, 개방적 국제도시이자 근대적 제도(帝都)로의 도약을 꿈꾸며 ‘문명개화’를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결국 ‘황성’은 ‘시민의 도시’가 되기보다는 ‘황제의 도시’가 되고자 했고, 그 결과 ‘일본인의 도시’ 경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한제국이 추진하고자 했으나 좌절하고 만 서울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일제 식민권력에 의해 ‘식민성’이라는 극도의 사회적·공간적 편파성과 제약성을 띤 채 추진되었다.

<하원호 동국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