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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피해배상 논란] 청구권협정 일본은 '개인배상' 입장 견지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청구권 협상 인정, 2007년 특별법 제정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2,631명에 6천100억 정부가 지급
2023년 03월 20일 (월) 13:12:29 [조회수 : 1207] | 수정시간 : 2023-03-21 21:04:19 박상민 press1@news-plus.co.kr

지난 6일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발표 계기로 야당과 시민단체 일각에서 일부 진보 진영이 해결책 반대에 이어 한일 정상회담까지 비난하고 있는 가운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협상 당시 한.일 양국의 입장이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과 일각의 주장에 당시 청구권 협정 내용과 이후 보상 과정을 보면 억지에 가까운 측면이 있어 민주당과 지지자들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강제징용피해배상과 관련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2015년까지 정부가 징용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지급하는 해결책을 시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배상이라는 표현 대신 위로금이라는 표현을 해 반발을 샀다.

2005년 1월 정부(당시 노무현 정부)가 공개한 한일 청구권협상 관련 문서에 따르면 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 측은 "(다른 피해자들에 원호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조치하고자 하는데 한국 측에서 구체적으로 조사할 용의가 있는가"라며 한국측 입장을 물었다. 피해자 개인배상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당시 한국측은 "우리는 나라로서 청구한다. 개인에 대하여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 "피해자 보상은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하겠다"고 일본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강제징용피해자 배상과 관련 노무현 정부 당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인정하고 2007년 민.관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정부 재정으로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 2,631명에게 6,184억원을 지급했다. 재원은 전액 정부 예산으로 조달했다. <사진은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민정수석)과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 대표가 정부중앙청사에 민관합동회의를 하는 장면>

노무현 정부는 외교문서 공개 후 일본 측에 배상요구보다 피해자 보상에 주력하겠다며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하고 추가 보상 절차에 착수해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184억원을 지급했다. 재원은 전액 국가재정으로 충당했다.

당시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논의를 위해 '민관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7개월간 조사를 거쳐 '한·일 협정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자금 3억달러에 강제징용 보상금이 포함됐다고 본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일본이 한국에 준 3억달러 및 차관 2억달러 등 5억 달러는 당시 일본이 보유환 외환보유고의 1/3에 달하는 규모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인정하고 2007년 민.관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정부 재정으로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 2,631명에게 6,184억원을 지급했다. 재원은 전액 정부 예산으로 조달했다. 

   
 

정부는 다만 보상의 불충분함을 인정해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 예산으로 위로금과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청구권 협정에 반발하며 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피해 배상을 줄기차게 요구하던 상황이었다.  

'한일 청구권협정 예비회담록'(1961.5.10)에 따르면 한국측과 일본측은 배상을 놓고 입장 차이가 확연했다.

일본은 미불금 변제를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한국은 국내에서 조치할 사안이라며 나라 차원의 보상을 강조했다. 

1961년 '한일청구권 협정'은 한미일 3국의 외교·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체결됐다. 

청구권 협정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했다. 

한일회담 예비회담 대화록(1961.05.10)에 따르면 제2조 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천9백51년 9월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 제 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했다.

(a)는 일방 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천9백47년 8월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 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이다.

예비회담에서 일본 측은 "피해자 개인에 대하여 보상해달라는 것인가"라고 한국측에 물었고 한국측은 "우리는 나라로서 청구한다. 개인에 대하여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일본측은 "우리측에서도 상당 정도 원호 조치를 하고 있으며 한국인 피해자에 대하여서도 가능한 한 조치하고자 하는데 한국측에서 구체적인 조사를 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측은 "물론 그런 것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 회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본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우리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일본측은 이에 대해 "이 소위원회는 사실 관계와 법률관계를 확인하는데 있다. 한국이 새로운 기초 위에서 고려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개인 베(이)스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측은 이어 "요컨데 우리 입장은 미불금이 본인 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국측은 "미불금은 일본인 상망자 부상자에 대하여도 상당히 보상하고 있는데 더욱이 다른 국민(한국인)을 강제로 징용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준데 대하여 상당한 보상을 하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밝혔다.

   
 

일본측은 "징용자 중에는 부상자도 있고 사망자도 있으며 또 부상자 중에도 그 원인이라든가 정도가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전연 모르고 덮어놓고 돈을 지불할수는 없지 않는가"라며 "일한간에 국민적인 감정이 있다면 이러한 문제일 것이며 상호 국민의 이해를 촉진시키고 국민 감정을 유화하기 위해서는 개인 베(이)스도 지불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했다.

이에 한국측은 "보상금 지불 방법 문제인데 우리는 우리의 국내 문제로서 조치할 생각이며 이 문제는 인원수라던가 금액의 문제가 있으나 여하튼 그 지불은 우리 정부 손으로 하겠다"고 했다.

일본측은 "인원수, 금액, 피해정도는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한국측에서도 그러한 의미에서 청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 권리로서도 구체적인 신고를 받어서 지불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한국측은 이에 대해 "그점 좀더 토의를 하면 이해가 갈 줄 알며 우리들이 아무 자료도없이 청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일본 측이 한국측의 나라 배상 요구에 대해 개개인의 피해 근거 제시를 요구하며 개인 배상을 고집한데 대해 국가 차원 배상요구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측은 "1952년 5월23일 Aide memoire에 의하면 한국측은 명부를 제시하겠다고 하였는데 명부를 제시할 수 있는가"라고 하자 한국측은 "명부는 불완전하다. 그후 조사를 하지 않았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조사하겠다"고 했다.

한국은 결국 뜻을 관철해 1975년 일본으로부터 3억달러의 무상지원과 2억달러의 저리 차관을 받았다. 배상금은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사용됐다.

이러한 점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배상금을 정부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정부는 "1965년 협정 체결 당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국가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권리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며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지만 1965년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2007년 특별법으로 추가 보상 절차에 착수했고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184억원이 지급된 것이다.

피해자들은 1997년 직접 일본에 건너가 판결의 강제성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에 피해자들은 2005년 2월 일본이 아닌 한국의 법원에 호소하기로 하고 서울중앙지법에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역시 패소했다. 

일본 법원은 현재의 신일본제철주금이 징용 당시 신일본제철을 계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한·일 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파기환송 판결이 나왔다.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김능환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을 만큼 고뇌 끝에 국제법과 조약을 넘어 정치적 결단에 가깝게 판결했음을 시사했다. 2007년 당시 특별법으로 배상을 받지 못한 징용피해자 15명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문재인 정부 4년간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배상을 받지 못한 징용 피해자는 3명만 남았고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방식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이행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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