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서해 피살 공무원 유가족을 면담하고 있다. / 사진 = 국민의힘 제공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판단을 사실상 뒤집자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나오는 등 전·현 정권 사이 충돌이 벌어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과 맞물려 민주당의 반발이 고조되면서 윤석열 정부와 전(前) 정부 사이에 대립각이 가팔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어제(16일) 당시 사망한 공무원 이씨에 대해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두고 현장조사 등을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서해상에서 표류하던 중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후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씨가 월북하려고 했다고 단정한 일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당시 문 정부는 이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발표했다.

사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는 등 표면적으로는 조용하게 추이를 지켜보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민주당 내부, 특히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감지됐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해경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여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며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했다.

청와대 참모였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안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냉전을 소환하려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전 새누리당의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유출 사건'이 떠오른다"라며 "남북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데 소품으로 쓰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친문(친문재인)계 핵심인 홍영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북 측이 이 씨의 인적사항을 소상히 알고 있었던 점, 이 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있었던 점을 거론하며 사건 발생 당시 해경이 월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했다.

당시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사건 경위를 보고했을 때 여야 의원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이런 가운데,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서 윤건영 의원을 겨냥해 "월북 의도를 밝힐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월북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게 상식적"이라며 "증거를 내놓아야 할 쪽은 월북 의도라고 결론 내린 문재인 정부다. 관련 정보를 '대통령 기록물'로 15년간 봉인해뒀는데, 켕기는 게 없다면 공개하라"고 날을 세웠다.

현 정부와 문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 전·현직 대통령의 회동과 청와대 이전,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인사권 문제 등을 놓고 충돌한 적이 있다.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인사권 행사 문제와 집무실 이전 구상을 둘러싼 이견 탓에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대선 19일 만에야 회동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더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현 정권 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출신 박상혁 의원이 참고인 조사 대상이 된 상황 등을 두고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선 전·현정권의 전면 충돌은 양측 모두 부담스러울 수 있어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관리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반복되는 신·구 권력충돌에 대해선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씨는 지난 2020년 9월21일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남방 2㎞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 이씨는 실종 다음 날인 22일 오후 북한 해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특히 북한군이 이씨를 총격 사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운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