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멀린 전 미 합참의장이 이끄는 국방·안보 대표단을 대만에 보냈다.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에 집중하는 틈을 노린 중국이 대만에 군사 위협을 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에 일종의 경고 신호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 동부 시간 1일 오후 9시(한국 시간 2일 오전 11시) 취임 후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을 갖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수호’와 ‘동맹 중시’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로이터는 28일(미국 시각) 바이든 정부 고위 관료를 인용해 “미국 대표단이 1일 오후 대만에 도착해 2일 저녁까지 머물며 차이잉원 대만 총통, 추궈정 대만 국방장관 등을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대만 대통령실도 미국 정부 대표단 방문과 차이 총통 면담 일정을 확인하며 “우크라이나 위기 속 미국 정부 대표단의 방문은 대만과 미국의 유대 관계가 굳건하다는 의미”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은 속속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총통을 만난다.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마이클 멀린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 메건 오설리번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으로 구성된 미 대표단은 1, 2일 양일간 대만을 방문해 차이 총통, 추궈정 대만 국방장관 등과 회동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3개월 만인 지난해 4월 대만에 대표단을 보냈고 이번이 두 번째다.

플러노이 전 차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최측근이다. 이런 인물을 보낸 것은 미국의 대만 방어 의지가 그만큼 굳건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당일인 지난달 24일 중국이 전투기와 정찰기를 잇달아 보내 대만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자 미국은 이틀 뒤 대만해협에 미사일 구축함 ‘랠프존슨’함을 급파했다.

바이든 정부 대표단과는 별도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도 3월 2~5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 총통을 만날 예정이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미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월 트럼프 정부 임기 만료 직전 대중 강경론자인 폼페이오 전 장관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바이든 정부는 공화당 소속인 폼페이오 전 장관의 대만 방문에 대해선 말을 아끼며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에선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대만에 기습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조했다는 국제 사회 비난 여론도 커지고 있다. 백악관은 27일에도 중국 정부에 러시아의 무력 침공을 공식 규탄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응하지 않고 있다.

앞서 중국은 “러시아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며 러시아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째인 2월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각국 안보 우려는 모두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6일 독일 안나레나 배어보크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일방적 제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왕 부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계속 동쪽으로 확장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가진 합리적 안보 우려는 적절히 해소돼야 한다”고 했다. 제재는 정치적 해결 과정에 방해가 될 뿐이라며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를 비판했다.

앞서 중국은 25일 유엔 안보리에서 진행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 표결에서 인도,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기권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기권한 나라는 러시아 편을 든 것”이라며 중국을 맹비난했다.

또, 중국은 관영 매체를 동원해 미국과 밀착하는 대만 정부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대만 해협에서 전쟁이 나면 미국이 대만을 도우러 올 것이란 민진당의 헛된 믿음에 조롱과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고 경제 제재 조치만 내놓은 것을 연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대통령은 세계의 지도자로서 국제 규범과 가치를 위해 싸우는 미국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조정관 또한 같은 날 화상 세미나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대만이라는 ‘2개 무대’에 “동시에 깊은 관여를 해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AP통신은 안보위기 국면에서 진행되는 이번 연설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선 불복 논란 등으로 극도로 분열된 미 정치권을 오랜만에 단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국정연설에 상하원 의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것은 2020년 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한 후 2년 만이다. 지난해 1월 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의 의회 난입 사태 여파로 이날 연설 때 의회 주변에 철제 보안 펜스가 설치되고 삼엄한 경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