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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헬조선 변혁전국추진위' 김승호 지도위원 "민중은 문재인 정권에 사기당했다"
"촛불혁명 이후 제도권 줄서기로 광장정치 사라져” “변혁적 현장 활동가 배출이 목표" “불법적 4대 재벌 권력 해체” “국정원 해체”
2021년 08월 06일 (금) 00:15:39 [조회수 : 1541] 뉴스플러스 press1@news-plus.co.kr

위선과 변절의 시대, 진보의 민낯이 드러나고 댓글조작을 통한 여론조작의 시대에 꽉 막힌 진보의 앞길을 향해 굽힘없이 전진하고 있는 변혁운동의 최일선에 서있는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설립추진위원회' 김승호 대표를 지난 7월21일 용산구 노동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올해 출범한 '헬조선 변혁 전국추진위원회' 지도위원이기도 한 김 대표는 변혁에 대한 의지와 입장을 분명히 하며 현재 운동이 개량과 관료화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나즈막한 목소리이지만 강인함과 세상을 꿰뚫는 직관력이 쇠를 벼리는 목소리에 날카롭게 묻어 나온다.

김 대표는 촛불시위 당시 광장정치를 외쳤던 이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줄서기하며 광장에서 흔적없이 사라졌고 문재인 정권은 민중의 뜻을 받아들고 세상을 바꾸지도 않고 주택정책은 완전히 실패해 오히려 집값을 올려놓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과'만 하면 끝났다고 생각하느냐, 정권을 잡았으면 그에 대한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 심판받아야 한다. 차기 대선에 후보를 낼 자격이 없고 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성 정치권이 아닌 변혁적인 새로운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정부 여당의 검찰개혁 추진에 대해 "권력기관을 어디 국민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했느냐, 오로지 정권 아래 두려고 검찰과 사법부 장악에 열을 올렸다. 검찰과 사법부를 장악했으니 이제는 국정농단과 분식회계를 통한 경영승계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까지 풀어주려고 하지 않느냐"고 혹평했다. 

인터뷰 일문일답에 앞서 김 대표는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설립 추진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소개했다. 학벌없는 사회를 만들자며 추진한 전태일 사이버노동대학은 교육부 관료와 기존 대학의 유착과 반대에 부닥쳐 고등교육기관인 '정규 원격대학'으로 인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혁 주체가 공무원이라고 했지만 공무원은 개혁대상이었는데 잘못 짚었다며 관료들을 하나도 장악하지 못했고 재벌과 관료에 얹혀서 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학벌없는 사회로 가야 한다며 참여정부 당시 사이버 노동대학 설립 신청을 하라는 공감이 있었다. 청와대의 국정철학에 따라 사이버 노동대학 설립을 추진했지만 교육부 관료의 벽에 막혔다"고 한다.  

현 정권에서는 아예 그런 얘기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촛불정부라고 하지만 달라진게 없다는 김 대표는 두 대통령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그나마 순수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국정운영 철학에서 노 전 대통령보다 더 퇴보했다. 권력잡는 게 목적이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학벌없는 사회로 가자는 것이었지만 엘리트 관료와 기성 대학들이 학위를 막 줘도 되느냐며 반대하면서 틀어졌다고 한다.

10여 곳이 신청했지만 겨우 영진사이버대학, 서울사이버대 등 몇 곳만 허가를 받았고 전태일 사이버노동대학은 평생교육기관으로 사이버 대학으로 아쉽게 인가받지 못했다. 사이버대학 취지와 달리 기존 대학부설 사이버대학들만 허가를 받아 대학의 학위장사, 돈벌이로 전락했다.

허가 과정에서 한 사이버대학 간부가 교육부 관리에게 신발에 돈다발을 넣어 전달했다가 후에 적발되기도 했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 대표께서 사회변혁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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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회변혁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두번이다. 첫 번째는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운동을하기 위해 간 것이다. 데모하기 위해 대학에 갔다. 고학을 위해 1964년에 서울에 올라와 이듬해인 1964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청량리, 전농동, 신설동 주로 동대문 지역에서 주로 살았다. 거기는 다 빈민촌, 산동네다. 말이 좋아 빈민촌이지 빈민굴이었다.

그런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원래는 상업학교를 다녀 취직해서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다. 인생의 갈림길은 3학년에 올라갈 때 취직반이냐 진로반이냐를 놓고 결정해야 할 때 '나 혼자 살겠다고 상고 졸업해 은행에 취업하고(당시 은행은 최고의 직업), 그런데 이게 맞나 고민했다. 세상을 바꿔야겠다. 정치인보다 학생 데모가 힘이 있다. 그래서 은행 대신 대학 진학을 택했다. 

1970년 11월 전태일의 죽음을 맞게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전 에도 학생운동에 한계를 느꼈지만 졸업하면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야한다. 그런 얘기도 학생운동 내에 일부 있었지만 전태일 동지가 산화한 것은 충격이었다. 그때 사회에 나가면 운동을 계속해야 겠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이게 두번째 계기다.

◆ 청년기는 어떻게 보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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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는 운동 밖에 없고 그외에는 몰랐다. 대학가서 운동 아니면 대학 다닐 이유가 없었다.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장학금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했지 주된 것은 운동에 관련된 것만 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운동에 관련된 사람들만 만났다. 
(전공이 무슨 과였는지 묻자) 학과는 경영학과인데, 상업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한 과목 먹고 들어가는 이점이 있었다. 사실 학과 선택에 별로 개념이 없었다. 상고 나왔으니 상과대학 간 것뿐이다.
1학년 때 보니 별로 사회에 관심이 없더라. 나는 고학해서 갔기 때문에 과 반장 선거에 나갔지만 안됐다. 그러다 서클에 가입하게 됐다. 거기서 신영복 선생도 만났다. 그런데 통혁당 사건 나면서 선배들은 검거를 피해 다녔고 그래서 우리끼리 학습했다.
선배들은 많이 제적됐다. 신영복 선생도 그랬다. 박성준(한명숙 남편)도 그때 들어갔다. 중형을 살았는데 선배들은 대부분 조사받고 나왔고 제적됐지만 교수님들이 괜찮아 탄원하고 그래서 신영복 선생도 사형을 면하게 하려 애썼다. 
종암동 캠퍼스에서 2학년 때 선배들 만나 데모하고 그랬다. 2학년 때 처음 3선 개헌반대 데모를 했다.

◆ 졸업하고 난 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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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취업 등 학생때 찍혀서 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한국노총에 채용돼 3년 정도 일하다 광주항쟁 때 짤렸다. 이후 5년 정도 위장취업해서 이 공장 저 공장 다녔다. 이후 경기도 안산에 내려가 조직활동을 하게 됐다. 노동자 교회도 만들고 선진 노동자를 조직하고자 학습 소모임을 만들고 현장의 변혁적 노동자를 조직했다. 한국노총에 입사 전 현장에 갈려고 했는데 학생운동 때 찍혀서 경찰이 집에 와서 동향을 체크해 현장 가는 게 불가능했다.
위장취업을 하면 예비군이 따라붙는다. 예비군이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씩 경찰이 집에 와 통.반장 통해 감시하고 완전히 감시에 노출돼 있다. 민주화의 봄 때니까. 완전히 잠복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합법적 공간을 찾아서 들어가자 그래서 한국노총에 들어갔는데 안기부(현 국정원) 한국노총을 휘두를 때여서 광주항쟁이 발생하면서 해고됐다. 나에게는 명망가 보다 일 속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다.
 
파벌 만들어서 하는 것 좋아하지 않으며 노동관련 출세 지향주의는 거부한다. 노동운동은 바닥에서 하는 게 중심이지, 자꾸 상층 관료조직이나 정치로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결국은 변절하지 않느냐. 노동운동은 밑이 튼튼한게 중요한데 대부분 서로 위로 올라가려고 경쟁하고 대공장은 노조 지부장하는 게 목표가 되고 있다.

◆ 사이버 노동대학은 그런 맥락에서 준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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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 운동권이 개량주의로 갔다. 아주 예외적인 몇개 빼고 운동권에서 무게중심이 상층관료기구로 갔다. 현장과 지역을 떠나 관료주의인 산별한다면서 전부 관료기구로 가려고 그랬다.

한편에선 개량화하고 한편에선 관료화됐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현장활동가를 조직하고자 하고 있다. 개량이 아닌 변혁을 위해서다. 당시 좌파나 우파나 겨우 개울 하나 건너는 차이 밖에 없었다.
변혁적 현장활동가를 대량으로 지속적으로 배출해야겠다. 그렇게 하려니 상담소 같은 것 가지고는 안되더라. 마침 인터넷이 활발해져, 알아보니까 캐나다같은 선례가 있다. 그전 같으면 노동상담소에서 활동했던 활동가들이 있는데 다 떠났다. 고시 보러가거나 상층 관료기구로 가거나 했다. NL(민족해방계열)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다 국정원으로 넘어가지 않았느냐.  

전국적 규모에서 지속적으로 활동가를 배출하고자 했다. 진정한 활동가의 모습보다는 파벌이나 만들고, 필연적 계급적 한계가 있고 뜨거운 가슴은 있겠지만 이론하나 가지고 방방뜨지 않았나. 그 한계가 소련 무너지면서 다 떠나갔다. 조국(전 법무부장관)이나 주대환이나 다를 게 얼마나 있나.  
지식인들이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이 지식인들 지도력 하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과잉대표된 측면이 있다. 필연적으로 계급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변절을 보면서 힘들긴 하지만 상심하지는 않았다.

◆ 사이버대학 성과나 보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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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태일 이름을 걸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을 만들려 할 때 내 이름으로 광고내고 '합시다'라고 일을 벌였는데 성공해야지, 나 죽고 난 뒤 하늘나라 가서 전태일 동지 만나면, 전태일 이름써서 실패했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겠나. 운동하는 사람은 실패하면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운동하니까 실패해도 괜찮다는 식은 안된다. 
보람이라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20년 동안 문닫지 않았으니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활발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력갱생했다. 그렇다고 학비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강사님들이 자원봉사해주셨기에 가능했다.
사실 이런 것이 더 잘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 보조금이나 자본가 도움, 재단에 지원 신청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노동자들 스스로 해야한다. 민주노총이 사무실 임대료를 지원받느냐, 운영비를 받느냐를 놓고 한참 논쟁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 공짜돈이 어디있나. 
노동자 농민이 자본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상한 논리를 갖다 붙인다. 운동권 지식인들이 아주 궤변을 늘어놓곤 한다.
심지어 한국노총까지 노동자의 힘으로 산별로 회관을 지었다. 민주노총은 그거 못한다. 대중 조직이 아니다 보니 못하는거다. 운동이 개량주의니까 받고, 받으니까 개량주의로 가고 악순환이다. 

◆ '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를 출범시킨 동기와 필요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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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에서 시작됐다. 의회 대신 광장정치가 주가 돼야 하는데 후에 타협적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최장집 같은 사람도 광장정치를 얘기했다. 그런데 탄핵 이후 어떻게 됐나. 광장정치를 얘기하던 흔적도 없어졌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정부라 하는데, 국민의 요구와 열망을 받아안고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았다. 민주당이 깃발들고 몇 백명 왔다하지만 민주당을 신뢰했나. 박근혜가 탄핵됐으니 정권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해도 광장을 접고 줄서서 하는 건 잘못된 거다. 그래서 탄핵결정하자마자 광장정치 논의를 시작했다. 근데 광장을 접고 다 저리로 갔다.
닭쫓던 개처럼, 그래서 우리라도 깃발들고 해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단체를 만들고, 그야말로 생각이 있는 지역에서 시도를 해보자. 해서 경북에서부터 시작해 강원에 조직하고 2017년 경북, 강원, 서울 세곳에 헬조선 변추위가 설립됐다. 

광장정치 하자고 해놓고서 때려치고 제도정치권 가는 거 보고, 무언가 조직을 하지 않고는 어렵겠다싶었지만 광장정치 하겠다고 하는 단체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임무를 광장정치로 하는 정파는 없다. 좌파든 우파든 개혁파든 변혁 이름을 걸고 있는 단체는 없다. 굳이 얘기한다면 범민련 동지들이 광장정치를 하고 있다. 한달 한번씩 하니까. 변혁노동자당, 진보정당도 광장정치를 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이거 만들 필요가 없었다. 거기 들어가서 하면되니까. 

◆ '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 가입자격, 구성원들의 조건 설명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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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기치가 변혁과 혁명이기 때문에 변혁, 개혁하자는 사람은 많다. 개혁해서 무슨 세상을 바꿀 수 있겠나. 개혁 운동은 변혁운동이 아니다. 첫번째 조건이다.

변혁을 한다면 변혁 정치투쟁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노동조합운동만 열심히 하라고 하면 그건 욕이다. 생디칼리즘이다. 변혁 정치운동이 노동, 생존권 투쟁보다 우위에 있다. 정치투쟁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는 사람이 두번째다. 

◆ '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 출범 후 성과가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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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가 올해 4월23일 창립됐다. 본조직을 만들기까지 4년 걸렸는데 본조직을 만든 것이 성과다. 과정에서 투쟁도 했다. 2018년 양승태 사법농단 때 그때도 운동권이 안 움직였다. 그런데 우리가 서초동에서 두차례, 차량시위도 하고 사법농단을 거론했다. 서초동에 있던 사람들을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사람을 노동자들이 나서서 비판한 것이다. 

사법부가 썪었다며 사법농단을 자기 이해를 떠나서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 올해초부터 서초동 법원 앞에서 삼성바이오분식회계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인 이재용 부회장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 법원에 구속을 촉구하는 투쟁을 지속하며 여론을 환기해 구속되도록 했다. 

회원들이 하면서 이런 게 적폐청산이구나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만 하는 게 아니잖나. 양승태가 구속은 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방향을 잡아갔다. 
문재인 정부가 하는 것만은 한계가 있겠다 싶었고 삼성재벌 해체, 바이오로직 분식회계 터져, 2020년 하반기 내내 투쟁을 전개해 의미가 있었다. 서초동에서 판.검사들이 집중된 한국 최고 엘리트 사회에서 전면에 사법농단을 내걸고 일상 운동을 전개해 성과를 냈다.  

◆ 삼성 외에 현대차, LG, SK 등 4대 재벌 해체 투쟁으로 확장하는 계획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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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LG, SK 등은 공적자금 지원 아래 성장한 초국적 자본이다. 그런데 삼성은 독특하다. 삼성의 정보력이 중앙정보부하고 맞먹을 정도로 이상한 조직이다. 삼성 장학생이라고 부르는 말단 공무원까지 엮어놔 노조설립 신고할 때면 이미 설립신고 들어왔다고 할 정도다. 이병철 때부터 국가권력과 결탁해가지고 돈을 축재한다는 점에서 정경유착, 부정부패를 기본수단으로 하는데서 다른 재벌에 비해 독보적이다. 그게 관행이 되다보니 다른 재벌들도 삼성에서 얼마 낸다고 하면 현대 SK도 따라서 액수를 맞춰 내지 않나. 삼성이 기준이 된다. 액수도 가장 많고, 4대재벌도 나아가서 불법적인 경제권력 다 해체시켜야 한다. 그 정점에 삼성이 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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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중점 사업으로 삼성재벌해체 사업, 주택문제 해결사업 두가지를 2가지를 중점사업 과제로 정했다.
전국적인 조직 만들면서 추상적으로 헬조선 그랬는데 점점 구체화됐다. 삼성 재벌 해체는 중요하다, 상부구조에선 국정원 해체다. 국정원이 옛날처럼 고문 안한다 해도 그 많은 인력이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른다. 
대공수사권만 넘겨준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다. 대공수사권 넘겨주는데 왜 그많은 비밀예산이 필요한가. 남한에 친미 반공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선전공작, 댓글공작을 하고 있다. 그걸 해체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다.

주택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이 정권은 이 부분에 대해 책임을 안진다. 사과만 하면 끝나는 것인가. 정치권력을 잡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주거권을 짓밟은데 대해서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 그정도 돼야 사회보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이 높은 것은 노령연금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고용 창출해야 하는데 일자리수석 다 날아갔지 않느냐, 그것도 책임 물어야 한다.
청년문제, 주거문제 정말 책임 물어야 하고 투쟁해야 한다. 

주거권 문제는 당장 시급하게 개선될 수가 없다. 당장 시급하게 할 것은 집값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가 한다는 게 기껏 돈 풀어서 재벌 건설사에게 집을 짓게하고 건설사 주머니 채워주는 것이다.
정권과 재벌건설사들이 결탁돼 토지공사가 결탁돼 있는 이 고리를 깨야한다. 토지주택공사(LH)를 해체시켜야 한다. 발주할 때 공개경쟁입찰이란게 있나. 다 대기업이 싹쓸이 한다.  

집값문제도 재벌해체, 주택공사 해체가 같이 이뤄지지 않으면 절대로 집값 안정화로 갈 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은 주택을 재분배해야 한다. 몇채씩 가진 사람들, 절반이 월세인데 언제 돈벌어서 집을 사나. 무상몰수, 무상분배는 자본주의니까 못한다 해도 적어도 유상몰수 유상분배는 해야 한다. 이승만도 했는데 왜 농지는 되고 주택은 안된다고 하나. 지금은 집값이 더 올랐다. 국민을 속이고 사기치고 있다.   

◆ 민주진보 진영에 대해 당부 말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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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정치란 거는 편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회의원들은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한다. 범위를 벗어나면 언론에 안 나온다. 오히려 비판받고 한다. 운동권은 광장정치가 주무대다, 지금이라도 광장으로 나오라. 민주당 2중대 때려 치워라. 민주당이 무슨 진보인가. 다 강령보면 민주당과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광장에 나와서 혁명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은 우익으로 넘어간다. 우익이란게 우리나라에선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 파시스트 아니냐. 
못하는 건 제도를 탓하고 하는데 그러니 국민이 등 안돌리겠나. 자기들이 잘못해서 우익에 헌납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운동에서 원칙으로 돌아와야 한다. 
민주당도 국정원법, 노동악법 그대로 놔두고 민주라고 명함 내밀고 하는데 그거 사기 아니냐. 
치안유지법 그대로 가지고 있고 일제식민지체제 유지되면서 검찰 등 일제 때 파쇼체제가 이어지는데 자본 경쟁은 얘기하면서 그런 파쇼체제는 왜 얘기를 하지 않는가. 재벌도 일제 체제다.
재벌까지도 다 일제 체제 아닙니까.  

◆ 국회에 당부한다면 시급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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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체제를 바꾸려면 국회가 헌법 질서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제헌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칠레의 사례처럼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때도 제헌의회를 소집했다.

우리에게 혁명이 반드시 필수적이다. 파쇼체제를 청산하려면 제헌의회 소집해야 한다. 혁명은 폭력혁명 통해 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제헌의회를 소집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 하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국회가 할일이 있다면 제헌의회 법률 제정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180석이나 있는데 왜 못하나. 제헌의회 하지 않으면 진보는 커녕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재벌해체, 주택재분배도 가능하다. 파쇼억압기구도 국민이 통제하게 해야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기들이 사법부와 검찰 장악을 시도했다. 검찰을 국민의 통제로 넘기는 게 아니고 자기들이 장악하고 이재용까지 풀어주려고 한다. 

◆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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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을 얘기한다면 적폐청산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정파 간에 권력 싸움하는데 4년을 지새웠다. 민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도 한 게 없다. 심지어 세월호 진상규명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사기당하고 배반당한 것이다. 민중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찍어서 지지를 했고 막판에는 180석까지 만들어줬지만 한 것이라고는 권력 장악하는 데만 썼다. 세상 바꾸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번 정권은 심판해야 한다.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에 대해) 어떠한 권력도 심판받아야 한다. 집값을 봐라, 문재인 정부에서는 집값 인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더 올랐다. 민주당은 다음 대선에 후보 낼 자격이 없다. 후보내지 않는 것이 양심이 있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기성 정치권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페루에서는 기성정치권에서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 교사 출신이 이대로는 안되겠다 하며 출마해 바람을 일으켰고 수구세력은 쿠데타 위협까지 했지만 당선됐다. 페루는 사회주의까지는 안되더라도 최소한 민주적 정부는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승호 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원회 지도위원은 ?

현재 '전태일을 닮은 사이버노동대학 설립추진 대표와 민주노동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대표 주요 약력> 

1951년 5월 30일생

1968년 서울대 상대 입학

1971년 10월 위수령에 의한 강제징집으로 군 입대

1975년 2월 서울대 상대 졸업

1976~78년 한국노동문제연구원 연구원 근무

1978~80년 섬유노조 교육선전부장 근무, 광주항쟁 직후 노동계 정화 차원에서 해임.

1981~86년 현장 노동생활

1986년 안산노동자권익쟁취투쟁위원회 위원장

1987년 경수지역노동자연합(경수노련) 의장

1988~89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국노운협) 노조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

1989년 전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전국투본) 부본부장

1990~93년 전국노운협 공동의장

1993년부터 전국노운협 지도위원

1990~95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지도위원

1990~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공동의장

199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이사장(현)

2000~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설립 추진위 대표(현)

 

<저서 및 역서>

『경제 대공황과 IMF 신탁통치』(1997, 한울)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1998,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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