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생산량의 절반이상이 공영도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운데 농업인(생산자) 보호와 소비자 이익을 위한 경매제도를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거래제도의 다양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을 현대화해 생산자에게 안정적 판로 제공, 소비자에겐 값싸고 안정적인 공급을 목표로 한 공영도매시장이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규정한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이 마련됐지만 수십년째 법안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 

도매시장법인(이하 경매법인)에 의한 수탁독점 체제가 유지되면서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농산물 출하자인 농민 권익 발전은 물론 농산물 안정공급과 소비자의 이익증진을 위해 농안법 설립된 공영도매시장이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년 전에 공영도매시장운영 주체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농안법이 통과됐음에도 승인권을 쥔 농수산식품부가 이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경매법인의 입김에 정부 관료들이 휘둘리며 20년 간 도매시장 적폐에 대한 개혁 요구가 묵살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등에 따르면 국내 공영도매시장은 전국에 33개(청과+수산 17개, 청과 15,수산 1)가 운영 중이다. 국내 농산물 총 생산량의 52%가 공영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특히, 가락시장은 공영도매시장 물량의 37%를 취급하는 핵심 (가격기준) 시장이다. 

통계청과 농식품부의 '전국 도매시장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청과물 총 생산량은 1210만 2천톤으로 이 중 공영도매시장에서 626만2천톤(52%)이 거래됐고 가락시장에서 234만2천톤이 거래됐다. 가락시장은 공영도매시장 물량 중 37%, 전체 생산량의 19%에 해당한다. 

현재 공영도매시장에서 거래제도는 경매제와 도매상제 두가지인데 거래물량은 경매거래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경매제는 '경매거래(상장거래)'로 생산자/출하자 -> 도매시장(경매법인 --->중도매인) ->소매상/유통업체,가공업체의 4단계로 도매시장 법인이 수탁 독점구조다.

도매상제는 생산자/출하자 -> 도매시장(시장도매인, 상장예외) -> 소매상/유통업체,가공업체의 3단계 구조다. 유통비용이 절감효과가 있는 도매상제는 상장예외품목에 한해 허용되고 있는데 상장예외품목은 경매법인도 거래가 가능하다. 

거래물량은 12%(시장도매인 5%, 상장예외 7%)다. 가락시장은 상장예외 비중이 9%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

거래물량 비중은 전국 공영도매시장을 경유하는 농산물의 88%가 경매거래를 통하고 있다. 가락시장의 경우 경매거래가 91%에 이를 만큼 편중이 더욱 심각하다.

도매상제는 12%이고 가락시장은 9% 수준이다. 거래방식에서 공평성을 잃고 경매법인을 통하지 않고는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위탁상이 가격을 쥐락펴락했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경매제가 투명성 확보라는 긍정적 면보다는 유통단계가 더 길고 유통비용도 더 드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출하주체인 농민들은 현행 거래제도를 선진국처럼 경매제에서 도매상제로 변경을 강하게 요구하는 등 농정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유통경로 다양화, 정보화 등 유통환경 변화에 맞춰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은 수의거래로 변화, 탄력적 거래제도 운영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이같은 세계적 유통환경 변화 추세에 맞춰 지난 2000년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위한 농안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가락시장을 비롯한 국내 공영도매시장은 여전히 수의거래제도(상장예외거래, 시장도매인제) 보다는 경매법인에 의한 거래제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안법 개정으로 본 국내 도매시장 거래제도 변화를 보면 위탁상(85년 이전), 의무상장거래(´85년), 상장예외거래(´94년), 시장도매인제(00년), 도매시장법인 정가수의거래로 변화했다.

위탁상제는 비제도권의 유사시장으로 위탁상에 의한 자유거래로 용산시장 등의 위탁상들이 강력한 시장지배력으로 농수산물 유통을 주도하면서 가격 후려치기, 거래대금 지급 지연 등 영세한 산지농민을 상대로 폐단이 극심했다.

위탁상제 폐단을 막기 위해 상장거래가 도입돼 '수집(경매법인)과 분산(중도매인)' 기능을 분리해 출하자는 경매법인을 통해 거래하도록 강제했다.

정부는 과거 위탁상의 전횡을 방지할 목적으로 1985년 경매법인에게 수탁독점권 부여하고 원칙적으로 경매･입찰을 하되 1993년 전품목 상장거래를 시행했다.

부분적으로 1994년부터 상장예외품목에 한해 정가･수의 거래를 허용하고 2000년 시장도매인제를 실시하고 2012년부터 경매와 동등한 거래원칙을 적용했다.

그러나 위탁상 횡포를 없애고 가격안정을 도모하려한 취지와는 엇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식품신유통연구원'은 2017년 "당초 취지인 가격 변동성 완화 효과는 없고 기록상장 등 위법·탈법 거래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1994년 농안법에서 상장예외거래를 도입해 특정품목을 경매법인을 경유하지 않고 출하자와 중도매인이 직접 거래하도록 했다.

이는 전품목 의무상장 시행(1993년)에도 경매법인의 수집능력 미흡으로 발생되는 기록상장, 수수료 부당 징수 등 문제 해소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2000년 농안법 개정을 통해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가능해지면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2004년 강서시장(52개사)에서 부분적으로 시장도매인제를 최초로 시행했다.  

서울시는 산하 공영도매시장에 전면적인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위해 조례 제정을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농식품부에서 2012년, 2016년 두 차례나 승인하지 않으면서 벽에 부닥쳤다.   

시장도매인제는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수집과 분산기능을 통합한 시장도매인에 의한 거래로 유통단계를 줄여(4단계 → 3단계) 유통비용 절감, 출하유통시간 단축, 물류효율화 추진 및 출하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음에도 농피아가 이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법 개정이 된 지 20년이 경과했지만 가락시장에서 시장도매상 상장예외거래 비중은 9%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경매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다.

시장도매인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는 미국,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운용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모델로 삼은 일본도 경매 비중이 줄고 정가수의매매가 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등 전문가들은 경매거래 감소, 수의거래(상대매매) 증가 사유에 대해 "경매방식은 경매를 거치기 위한 추가적인 유통비용이 발생하고 신속한 거래의 어려움과 안정적 거래(가격, 물량)를 원하는 생산자․소비자의 수의매매를 통한 거래 요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경매거래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10% 이하까지 줄었다. 일본 중앙도매시장에서 경매비율은 금액기준으로 1985년 75%에서 2018년 9.4%로 크게 줄었다.

대형 소매업체의 성장 등 농산물 유통환경 변화에 따라 경매거래로는 정시·정가·정품·정량의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한계에 봉착했다.

최근 일본도매시장법도 정부의 일률적 규제에서 시장개설자 자율적 판단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도매시장을 규제하기 보다는 개설자가 시장상황 등에 맞게 자율적으로 경쟁을 유도하고 시장의 활력과 창의성 제고하려는 차원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6월 도매시장법인만을 통한 거래 원칙(중도매인 직접집하 금지)등을 개설자가 시장별 상황에 따라 정할 수 있도록 도매시장법을 전면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도매시장법을 기존의 7장 83조에서 6장 19조로 개정하여 규제를 대폭 완화시켰다.

미국과 유럽은 초기 경매제 이후 시장도매인제(일명 ‘도매상’)로 전환했다. 네덜란드 화훼시장과 일부 협동조합의 산지경매를 제외하고는 소비지 도매시장은 모두 도매상제도를 채택했다.

경매제는 높은 가격변동성, 4단계 유통구조에 의한 높은 유통비용, 출하 선택권 제약, 장기간 거래제도간 경쟁 없이 유지되면서 생산자‧소비자 보호에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다. 

특히, 공영도매시장 거래물량의 37%를 취급하고 있는 가락시장에서 경매제에 의한 문제 및 도매시장법인의 수탁 독점권에 따른 폐해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경매제는 당일 반입물량에 따라 높은 가격 변동성으로 수급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년 널뛰기가 반복되는데 2018년 8월 급등했다가 2019년 8월 53% 급락하고 2020년 8월 132% 급등했다.

출하자는 가격결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깜깜이 출하’, 경매시각 경과 후 도착 물량의 ‘떨이판매’로 속앓이를 하고 있고 매년 저장물량 비축 및 방출, 산지폐기 등 막대한 수급조절용 예산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수매 비축, 산지 폐기 등 가격 폭등락 보완에 2000억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선진국처럼 도매상과 생산자가 생산원가가 반영된 사전 계약거래(6개월～1년 전)를 통해 판매 규모를 미리 확정함으로써 자율적 생산량 조정과 수급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당일 반입물량 경매를 예약형 수의매매(시장도매인, 상장예외품목 확대 등)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매과정의 공정성·투명성에 심각한 의문 제기되고 있다. 

동일 출하자의 농산물임에도 경매법인간 경락가격이 최소 2.5배, 최대 12배까지 차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2월5일 이모씨가 출하한 오이(18kg)의 경우 경매가격이 A법인은 7만원,  B법인은 2만6천원으로 2.7배(44,000원) 차이를 보였다.

또 8월6일 양모씨가 출하한 열무(8kg)는 A법인이 1만 1750원, B법인은 1천5백원으로 7.8배(10,250원) 차이를 보였고 8월9일 최모씨가 출하한 청양고추(10kg)는 A법인이 2만4000원, B법인은 2천원으로 12배 차이를 보였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2019년도 경매 647만 5천건을 분석한 결과 1인 경매가 24만 3천건(3.8%), 1초이내 경매가 103만 6천건(16.5%)으로 나타났다. 경매과정에 공정성, 투명성에 의문을 낳는 대목이다.    

최근 5년간 경매사의 ▲경매가 조작 ▲운송비 횡령 등 불법행위 58건이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았다.  

공영도매시장 전체 경유율은 하락하고 시장도매인제를 시행하는 공영도매시장은 고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영도매시장 경유율은 58%(´16) ➡ 54%(´17) ➡ 52%(´18)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APC(산지유통센터), 조공법인 등 규모화된 산지조직의 도매시장외 유통물량이 증가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 역시 가격이 불안정한 도매시장보다 산지와 직거래 선호하고 있다.

2016년 KREI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 유통업체 바이어 선호도는 1위가 산지 직구입이었고 2위는 벤더였다. 도매시장은 3위로 가장 낮았다.

경매법인의 수탁독점권이 보장되는 현행 경매제는 수혜대상자인 농민과 소비자 대신 투기적 자본을 위한 돈벌이의 장으로 변질돼 공영도매시장의 존재가치가 크게 상실되고 있는 상황에서 20년전 농안법으로 인정된 시장도매인제를 조속히 도입하는 것이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길이자 농산물 가격안정과 소비자  권익을  보장하고 식량주권의 토대를 굳건히 다지는  올바른  길임을 농식품부는 더 늦기전에 깨달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투기적 자본이 지배하는 경매회사 주도의 가락시장에 20년이나 지속돼온 유통업계의 적페청산과 중장기적으로 농업을 살리고 농업주권을 살리는 첩경인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즉시 승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