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별세한 시대의 큰 어른 백기완 선생이 사후 잠들 곳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옆을 희망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고인의 지인에 따르면 백 선생은 모란공원을 찾을 때면 "내 자리는 여기야. 태일이 옆이 내 자리야"라고 말했다. 

고인은 평소 민중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조국통일과 순우리말 찾기에 한 평생 신념을 갖고 노동자와 도시 빈민, 농민의 벗이 되어 큰 울림과 힘이 되었다.

백 선생이 광주민주묘역 등을 마다하고 모란공원이 내가 있을 곳이라고 한 것은 영면에 들어서도 전태일 열사의 곁에 누워 노동자와 함께 하려는 선생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의 전태일 열사 옆 자리는 현재 비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고 백기완 선생은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고 장준하 선생과 1970년대 유신독재에 저항의 선봉에 섰다. 1974년에는 장준하 선생과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구속됐다. 

장준하 선생 가족과 관련된 숨겨진 일화도 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씨가 가까웠던 언론인에게 전한 일화다.

사상계 편집장으로 있다가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전직한 한 언론인이 장준하 선생의 자녀에게 호부견자라고 비아냥댔다. 이 말을 들은 백기완 선생은 조선일보를 찾아가 편집국장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백 선생에 대해 고소하지 않았다. 백 선생이 해당 편집국장에게 "당신이 사상계 편집장을 지낸 사람 맞는가. 어떻게 장 선생의 자녀를 그렇게 비하할 수 있느냐"라고 호통을 치자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고소 대신 오히려 백 선생에게 제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일보는 지금처럼 보수화되지 않았던 때라 사상계 편집장이 편집국장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앞서 고인은 이날 오전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편 백 선생의 후배들은 장례위원회를 구성하며 위원 모집을 하고 있다. 장지는 고인의 유언대로 마석 모란공원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