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의 경로창발성

                                                                                                                   홍기준 (경희대 교수)

전쟁이 종식된 후 체결된 휴전협정의 결과로 야기된 한반도의 분단 상태는 여전히 경로의존성을 가지고 지속되고 있다. 현재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남쪽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로 인하여 한반도에는 평등가치를 추구하는 세력과 자유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이 서로 대립하는 냉전구조가 고착화 되었다. 나는 인류의 문명사적 모순을 상징하는 휴전선이 묘하게도 태극모양으로 그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 (David Bohm)은 부분 속에 전체가 있다는 홀로그램적 우주관을 제시한 적이 있다. '접혀진 질서' (Implicate Order)로 설명되는 그의 우주관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질서는 이미 촬영된 영화가 상영되듯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의 우주관이 반듯이 숙명론을 의미하지는 않으나 모든 질서가 하나의 씨앗 속 유전자처럼 프로그램화 되어 배태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시각으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본다면 한반도 문제가 바로 인류의 문명의 축소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일단 분열된 휴전선은 접혀진 질서가 펼쳐지듯 무너지고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기나긴 인류문명의 흥망성쇠를 돌이켜 볼 때 이러한 결론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북한 붕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통일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인류문명의 새로운 질적 변화를 예고한다고 본다. 나는 이것을 한반도 통일의 경로창발성이라고 명명한다. 분단의 역사가 경로의존성을 가지고 지속되다가 결정적 순간에 경로가 바뀌게 되고 새로운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질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명의 힘이다. 마치 악기가 공명통을 통해 음파가 증폭되어 크고 웅장한 소리가 울려 나오듯이 분단된 남북한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행동으로 실천할 때 통일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새로운 문화와 제도가 창달되어 인류문명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통일 한반도의 비전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