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세계 최대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씨에 대한 미국 송환을 불허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손 씨에 대한 법원 결정에 대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20부(강영수 정문경 이재찬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임의적 거절 사유가 있다'며 미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청구에 따라 한국 법무부가 지난 4월 신청한 범죄인 인도 심사 청구를 기각했다. 국내에서 웰컴투 사건의 수사를 위해 손 씨로부터 정보를 더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결정에 따라 지난 해 5월 2심에서 구속됐던 손 씨는 전날 낮 12시 50분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곧바로 석방됐다. 

범죄인 인도 청구를 거절할 사유는 '절대적 사유'와 '임의적 사유'로 나뉜다. 절대적 사유는 범죄인을 인도해서는 안 되는 사유를, 임의적 사유는 범죄인 인도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를 뜻한다.

재판부는 손씨의 경우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거나 국내 법원에서 재판 중인 경우,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경우 등의 절대적 사유가 없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임의적 거절 사유 중 하나인 '대한민국 국민'인 점을 고려해 범죄인 인도가 적절한 지에 대해 살펴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지대한 관심과 주목을 받은 원인은 무엇보다도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가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반인륜적이고 극악한 범죄임에도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할 정도로 적정하고 실효적인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의 해당 범죄 법정형 자체가 미국보다 현저히 가볍고 관련 입법이 불충분할 뿐 아니라 그동안 수사 기관과 법원도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 관련 문제의식이 미약한 상태에서 형사사법 제도를 운영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청구인인 검사도 인정했듯이 범죄인을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 인도 제도의 취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웰컴 투 비디오' 관련 국내 수사가 진행 중이며 수사를 순조롭게 진행하려면 손씨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하는 점을 인도 불허의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자금 흐름을 추적한 결과 손씨가 사이트를 운영하는 동안 약 4000명의 회원이 7000회에 걸쳐 이용료를 지급했다"며 "신원이 확인된 회원 346명의 국적은 한국 223명, 미국 53명, 기타 70명"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인 회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 음란물 관련 범죄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손씨의 신병을 국내에서 확보해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로 수집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의 부친이 아들의 송환을 막기 위한 시도가 주효한 셈이다. 앞서 아들의 미국 송환을 허가를 막기 위해 말아달라는 탄원서를 지난 5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손 씨는 추가 조사를 통해 국내에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원의 송환 불허 결정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손 씨가 받은 형량이 1년 6개월로 배가 고파서 달걀 16개를 훔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것과 같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법원의 결정이 “손씨의 미국 송환이 한국의 성범죄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한국의 아동 포르노 반대 단체들에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다”고전했다.

NYT는 이어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미국인 남성 중 일부가 징역 5년에서 15년형을 선고받은 반면 손씨는 2심에서 1년 6개월형을 받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의 한국 특파원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세계 최대 규모의 다크웹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가 법정에서 자유의 몸으로 나와 한국 내에서 분노가 일고 있다"며 "한국 검찰이 너무 배고픈 나머지 달걀 18개를 훔친 남성에게는 1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구형했는데, 이는 손정우가 받은 형량과 같다"고 썼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강영수 판사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이용자는 강 판사에 대한 대법관 후보 지명 철회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미국 법무부가 한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구를 하면서 시작된 손 씨 송환이 불허되면서 추미애는 미국 측에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는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판결의 취지를 존중하며 관련 조약·법률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송환 불허 결정에 따라 추미애는 미국 측에 이번 인도 거절 결정의 취지와 향후 절차 등에 관해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상황을 맞게됐다.

이번 결정은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거 범죄인 인도 청구가 신청되면 정치범을 제외하곤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최근 10년 동안(2010∼2019년) 서울고법은 인도심사 청구 사건 총 30건 가운데 불허 결정은 정치범인 중국인 류창(劉强) 씨 사건 1건에 불과했다.

류 씨는 2013년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 방화사건과 관련 일본 측의 범죄인 인도 청구가 제시되자 법원은 한일 범죄인 인도 조약과 국제법상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따라 불허했다.

한편 범죄인인도법상 검찰은 법원의 인도 거절 결정이 이뤄질 경우 지체 없이 구속 중인 범죄인을 석방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그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