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를 비롯한 범 현대가가 5000억원 규모의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한다.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 범현대가 기업 사장단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복지재단 '아산나눔재단' 설립계획을 발표했다.

재단설립준비위원장은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기로 했으며 이석연 전 법제처장, 김태현 성신여대교수, 한정화 한양대 교수, 영화배우 안성기,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등이 준비위원으로 선임됐다.

재단 출연금 5천억원은 범현대가의 오너들이 내놓은 사재가 큰 몫을 차지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6째 아들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가족이 최대 주주다이며 현대백화점은 3남 정몽근 명예회장, 현대해상은 7남 정몽윤 회장이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정 명예회장의 동생이자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낸 고 정세영 회장의 장남 정몽규 회장이, KCC는 고 정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상영 명예회장과 장남 정몽진 회장이 지배주주다.

이번 재단 출범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빠졌다.

재단의 특징은 기존 재단들이 기업자금 위주였던 것과는 달리 오너들의 사재 출연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정 전 대표가 2000억원, 다른 현대가 구성원들이 240억원을 내놓는다.

이번 재단설립은 그간 기업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국면 전환용으로 복재재단 설립 등의 카드를 사용해 온 것과도 다른 모습이다.

이들은 지난 3월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한 뜻있는 사업을 논의한 끝에 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전 대표는 가장 많은 2000억원 가량의 사재를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보유(지분 10.8%)한 현대중공업 주식(2조9000억원 상당)의 약 10%에 달하는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셈이다.

이번 재단출연은 정몽준 의원의 대권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대표최고위원은 2009년 9월 박희태 대표(현 국회의장)가 경남 양산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당헌당규에 따라 차점자인 정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해 2010년 6.2 지방선거때까지 대표직을 수행하다 6.2지방선거 참패로 대표직을 내놨다. 

여권내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는 잠룡그룹(이재오, 김문수, 오세훈)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공생을 위한 기업역할'을 강조한 이후 가장 먼저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몽준 의원은 의정할동이나 대한축구협회장 등을 맡았을 당시 주변에서는 돈을 쓸줄 모르는 사람, 구두쇠라는 얘기가 적지 않게 나왔었다.

실제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에도 그는 돈을 쓰지 않는다며 선거 캠프에서 불만섞인 소리가 나왔다.  

이번 재단 설립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동안에는 가만있다가 뒤늦게서야 복지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은 계산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공생발전' 개념을 언급한 지 하룻만인데다 내년이 대통령선거를 한해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대표 측은 정치적 해석이 나오는 것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이와관련 단지 정주영 명예 회장의 창업정신을 기리고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복지재단 설립 계획을 밝히는 기자 회견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한진중공업 사태 등으로 재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뜨거운 상황에서 복지에 관심을 갖는 지도자로 이미지를 부각하고 일정정도 박근혜 견제효과도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치권도 정 전 대표의 사재 출연 배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중 상당수는 환영 의사를 밝힌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경계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