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진보 사학계의 큰 산인 이이화 선생이 18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이 선생은 정규 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실천하는 역사학자이자 역사관련 저술도 활발했다. 말만 많은 역사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과 기상이 넘친다는 평을 들었다.

스스로를 향해 "나는 절반은 역사책 쓰는 사람이고 절반은 현실 속의 역사 운동가”라며 50년 넘게 한국사를 연구, 집필했다.

특히 해방 이전까지를 다룬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는 1994년 기획과 집필을 시작해 10년 만에 완간했다. 20여 년 동안 300쇄, 독자 50만 명을 기록할 만큼 독보적 역사책으로 2015년 개정판을 냈다. 개인이 쓴 한국 통사로는 최대 분량으로 22권에 이른다.

정치사 위주의 역사 서술 대신 경제ㆍ사회ㆍ문화를 아우르고 생활사와 문화사를 중심에 놓았으며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가는데 주목했다.

고인은 1936년 주역의 대가였던 야산 이달의 넷째 아들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친과 전북 익산으로 이주했고 학교에 다니는 대신 부친에게 사서(四書)를 배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가출해 고학하다 광주고를 졸업했고 서울로 와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중앙대로 편입)를 다녔다.   

대학을 중퇴하고 외판원, 술집 종업원, ‘불교시보’ 기자, 학원 강사 등 다양한 일을 했고 일간지에서 임시직을 거쳐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전 해제를 쓰면서 신문과 잡지에 ‘허균과 개혁사상’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를 기고하면서 유명해졌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가 창립될 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고 2대 연구소장을 지냈다. 당시 이사장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었고 소장은 정석종 영남대 교수, 부소장은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였다.

고대사와 관련해 과학적 역사학을 강조하면서 단군 대제국 건설 같은 역설을 부정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들도 있지만 내 입장은 과학적 역사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것과 같은 억설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구 선생이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상화를 경계해야 한다 주장했고 역사 속의 여성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역사에서는 민족 우수성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이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민족주의 사관도 경계하는 식이었다.
 
또 "나를 좌빨이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라며 "나는 강단 사학과 정면 대결한 적 없다. 어느 쪽이든 엉터리 주장에 반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강의실 밖의 역사를 주로 저술했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 '허균의 생각' '전봉준 혁명의 기록' 등을 남겼다.

고인은 단재상, 임창순 학술상을 받았고 2014년엔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씨와 아들 응일 씨, 딸 응소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