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다들 얼마나 바뀌었는지, 어떤 고민과 구상을 하고 지내는지, 어떻게 자기 땅에 든든히 자리 잡고 일하고 있는지 정말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 사이 무려 7년을 끌던 사건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두고 이곳 대전으로 옮겨왔습니다. 답답했던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지내던 수원옥 시절에 비해 이곳에선 흙도 밟고 하늘도 볼 수 있으며, 바람의 질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동지들은 저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동지들을 힘껏 안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저의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심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애써오신 원로 법조인들께서 나서 주신데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내란음모의 멍에를 쓰기 1년 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검찰은 저에게 국고사기라는 황당한 덫을 놓았습니다. 무려 6년의 재판 끝에 촛불혁명 이후에야 모두 무죄로 결론이 났습니다. 국고사기 사건이 저와 진보정치에 도덕적 흠집을 내기 위한 시도였다면, 그 뒤를 이은 내란음모조작사건은 정치적으로 진출하는 민중을 위협하고 민중과 진보정치가 확고하게 결합하는 걸 방해한 모략이었습니다. 만약 공정한 법정에서 ‘내란음모’사건을 다루었다면 내란음모사건 역시 당연히 무죄였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잘못된 판결은 바로 잡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을 반세기 넘게 옥죄어 온 최악의 적폐인 분단을 극복하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내란음모조작사건은 분단체제가 낳은 괴물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족의 평화와 번영은 빈 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2.
사실, 촛불항쟁이 일어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작년의 남북정상회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보면서 이제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백년이 찾아오고 있다는 예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촛불혁명을 이뤄낸 민중의 요구는 그저 정권교체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 촛불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이 변화했습니다.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난 것이나, 유례없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현장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 모든 변화의 현장에 여기 모이신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백년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정권교체를 넘어 온갖 억압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두가 주인 되는 세상입니다. 돈이 중심이고 돈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주인인 나라입니다.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라 민족이 화해하고 협력하며 공동 번영하는 평화의 새 시대가 와야 합니다.
민중의 나라. 자주의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백년의 깃발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금새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던 일들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은 낡은 시대를 되살리려 합니다. 그들은 낡은 분단질서를 붙잡고 시대를 거스르는 반북을 내세우며 대립, 갈등을 조장하며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물론 황교안씨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나,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를 촛불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 하는 건 모두 헛된 꿈일 뿐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지금처럼 좌고우면 한다면 역사는 제자리걸음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남북관계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서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주춤거린다면 평화와 번영도, 통일도 늦추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주 없이는 통일도 없습니다.
스스로 제 발로 설 때만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새로운 백년을 출발하자면 오직 자주의 원칙 위에 서야 합니다.
3.
동지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습니다. 사회의 변화는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주체의 강한 의지와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후퇴, 자유한국당의 반동공세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민중의 정치역량 강화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민중 스스로 각성하고 조직하여 정치의 주인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문재인 정부도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순조롭게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지여러분.
새로운 시대는 우리 목전에 이미 다다라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치역량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민중의 아들, 딸로 태어나 민중의 기쁨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며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민중의 희망을 만들어 왔습니다.
맨 처음 자주의 깃발을 들었으며 민중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진보정치를 일구어낸 사람들입니다.
박근혜 정권의 모진 탄압을 헤쳐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개척하는 것은 저와 동지들이 가진 자부심과 긍지의 원천입니다.
저는 비록 감옥 안에 있지만 늘 동지들과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동지들이 없다면 나는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동지가 좋아서 이 길을 나섰고, 지금 바로 옆에 동지가 있으니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결속된 우리의 걸음을 막을 자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뭐래도 다가오는 미래는 민중의 것입니다.
2019. 7. 16 대전옥에서
이석기
주말인 20일 하루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 정당과 보수성향의 태극기부대와 우리공화당이 잇달아 집회를 열고 광장을 달구었다.
20일(토) 진보성향 사만서회단체는 오후 3시부터 '이석기 의원 석방 대회'를 개최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2013년 내란음모·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9년형이 확정돼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국정원이 내란선동 혐의를 적용했지만 무죄가 확정됐다. 현재 7년째 수감 중이다.
민주노총과 민중당,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 등 60개 진보정당과 사회단체로 구성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이하 구명위)'는 이날 오후 4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를 진행하고 이석기 의원을 지체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대회에는 '석방이 정의다' '석방이 민주다' '감옥문을 열자' 등 이석기 전 의원의 사진이 찍힌 푸른색의 소원지 10만장이 그물망에 매여 광화문 북측 광장을 푸른색으로 물들여 장관을 이뤘다.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줄과 줄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대형 크레인 6대가 들어올렸다.
이날 집회에서 함세웅 신부는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이라며 "이들과 같은 뜻으로 시대변혁을 위해 애썼던 이석기 의원이 감옥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은 전혀 실체가 없는 내용을 조작해 내란을 선동했다고 처벌받은 것"라며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되고도 이 전 의원이 수감돼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이 땅에 비극적 전쟁이 있어선 안된다며 평화를 외쳤던 국회의원이 감옥에 갇힌지 7년"이라며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과 함께 이석기 의원이 말하는 양심과 정의, 평화를 위해 뚜벅뚜벅 걷겠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이석기 전 의원이 전하는 ‘옥중서한’도 공개됐다. 이 전 의원은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면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무죄였을 것"이라며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분단체제가 낳은 괴물"이라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이어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면 보면 평화와 통일이 늦춰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이석기 전 의원은 종북몰이 희생자, 사법농단 피해자, 자유평화 선구자라며 문재인 정부는 8.15 석방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 전 의원 사진이 인쇄된 파란색 ‘소원지’ 10만장을 그물망에 걸어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광화문 북측광장 전체를 드리워 광화문광장을 자유를 상징하는 푸른색 물결로 물들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지난 13일 이 전 의원이 수감된 대전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보행진을 시작해 일주일 동안 수원 - 잠실을 거쳐 224km에 이르는 도보행진을 통해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이날 광화문광장 인근인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대거 이석기 석방대회에 동참했다.
참가자들은 "(이석기) 석방이 정의요 민주다" "사법농단 피해자인 자주와 정의, 평화의 정치인 이석기를 석방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국민의 힘으로 석방시킬 것"을 다짐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이날 오후 2시부터 5000명이 참가한 ‘포괄임금제 폐지 촉구 집회’를, 학비연대는 2000명이 참가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 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는 인기 민중가수 안치환 씨도 참가했다. 안 씨는 사람이 꿏보다아륨다워 등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했다.
안 씨는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왜 아직도 이석기 의원이 수감돼 있는거냐, 어떻게 세운 정부인데 이 의원이 수감돼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안 씨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빨갱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며 사상의 자유와 생활을 핍박하는 국가에서) 빨갱이라는 단어가 인권을 유린, 탄압하는 현실을 담은 노래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대회에는 더운 날씨를 감안해 수박 화채가 등장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참가자들을 위해 수박 200개를 주문해 수박농가도 돕고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을 위해 수박 화채를 제공했다.
한편 이석기 석방대회가 열리는 동안 인근에서는 태극기 부대 등 보수성향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태극기부대는 문재인 퇴진과 경제정책 전환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이석기 석방대회가 끝나자 우리공화당을 큰 글자를 새기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형사진과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웃한 대형사진으로 래핑한 대형버스와 행사진행 차량이 대거 광화문광장 주변에 주차했다.
태극기 부대는 우리공화당이 광화문광장 옆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서 연 집회장으로 이동해 박근혜 석방과 문재인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우리공화당 집회에서는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참가자들을 향해 '빨갱이'라며 노골적인 비난공격이 거침없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황교안 자한당 대표가 5당 대표회담을 제안하고 참석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준 꼴이라고 주장했다.
연단에 오른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광화문광장의 주인이 빨갱이, 친문(親文, 친 문재인대통령계) 들의 광장이냐, 빨갱이들은 천막치고 집회하도록 하는데 우리공화당은 왜 안되느냐, 광화문광장은 애국시민들의 것"이라고 했다.
조원진 공동댕표는 촛불혁명을 "촛불쿠데타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과 싸워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펴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조 대표는 그러면서 애국가는 광화문광장에서 부를 것이라며 집회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한 시민은 대회가 끝난 뒤 뒷정리를 위해 청소를 하고 있던 여성 2명에게 말을 건네며 북쪽으로 가라고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50대 남성은 빗자루질을 하며 대회 뒷정리를 하고 있던 여성들에게 뭐하는 거냐고 묻고 여성들이 봉사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이석기 석방을 요구하면 북쪽으로 가지 왜 여기 있느냐”고 했다.
정치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이 국민의 사고와 생활을 수십년간 어떻게 지배하며 낡은 틀에 가두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 조미 수뇌상봉이 이뤄지고 남북미 정상이 남과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장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시대에 관 속에 들어가야 할 국가보언법이 그대로 존치돼 이석기와 양삼수를 가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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