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사퇴압박을 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과 관련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구속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26일 새벽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전날(25일) 오전 김 전 장관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 기각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물증을 확보한 만큼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크지 않다며 영장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청와대의 윗선 개입 수사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박 부장판사는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 접촉하기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수사는 잘했지만 증거인멸과 도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법원에 설득하지 못한 셈이다.

앞서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고 후임자로 친정부 인사를 앉히려 한 것으로 보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은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김모씨에게 사표를 내라고 요구하고, 이에 김씨가 불응하자 '표적 감사'를 벌여 지난해 2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김 전 장관은 김씨의 후임 상임감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출신인 친정부 인사 박모씨가 임명되도록 미리 박씨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박씨가 탈락하자 환경부 다른 산하기관이 출자한 회사 대표로 임명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박씨는 청와대가 환경공단 상임감사 후임자로 내정했다는 의혹의 당사자로 지난해 7월 상임감사 자리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뒤 같은 해 9월 환경부 산하기관이 출자한 자원순환 전문업체 대표로 임명됐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을 구속한 뒤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는지 수사에 속도를 낼 참이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 부장판사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김 전 장관이 위법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탄핵 직후 정상화해야 하는 상황의 불가피성을 감안했다.

박 부장판사는 ▲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청구하고 표적 감사를 벌인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됐던 사정, ▲ 새로 조직된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정 ▲ 해당 임원 복무감사 결과 비위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 등을 꼽았다. 

아울러 박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의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 부장판사는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법령의 해당 규정과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인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