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과 원내대표 나경원이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탄핵 사태 이후 국정농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자 입 밖으로 사면과 석방 문제를 거론하는데 신중한 태도를 취했던 것과 크게 달라진 태도다.  

황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오래 구속돼 있고 건강도 나쁘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구속되어서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 국민들의 의견이 감안된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속집행정지나 보석,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 조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다소 조심하듯 신중한 발언을 했다면 나경원 원내대표는 한 발 더 나갔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박 전 대통령 사면 결단을 내릴 때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 전 대통령의 석방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부분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때가 되면  사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황 대표보다 한 발 더 나간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 원내대표는 "그런 부분을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기보다는 문 대통령이 결단해 주시는 것이 맞는다"며 "그 시기를 지금이라고는 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 권력이 전 정권에 대해 비판하던 잣대로 들이대면 현 권력이 더하면 더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문 대통령이 결단할 때가 올 것이며, 문 대통령이 적당한 시점에 결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사면은 수감자 중 형(刑)이 확정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진행 중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 조치는 당장은 어렵다. 그런 만큼 나 원내대표의 이런 언급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이후 국민통합 차원에서 문 대통령이 사면을 결단해달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황 대표는 다소 신중한 모드로 발언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끌어들이려는 사면을 거론했다.

일각의 배박론까지 제기됐을 만큼 신중함을 유지해 온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가 같은 날 약속한 듯 박근혜 사면론을 꺼낸 것은 최근 여론의 변화가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리얼미터가 4~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미세먼지 여파로 2주 연속 내림세를 보였고 정당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8.6%(▲0.3%p), 한국당 29.8%(▲1.0%p)로 조사됐다.

한국당은 2주 여속 상승하면서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16년 10월 2주차(30.5%) 이후 약 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 대표는 또 야당의 분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떨쳐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당에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 여권이 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야당 분열의 촉매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져 있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 정권이 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뽑아 들 경우, 보수 정치권이 또 다시 탄핵이 옳았냐 공방으로 빠져들어 분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한국당 내 일부 옛 친박계 핵심 의원들이 탈당해 ‘친박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설이 돈 것도 이런 우려를 키웠다. 그럼에도 한국당 지도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박 전 대통령 석방 또는 사면 필요성을 공개 거론하고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후 한국당 분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현 정권이 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우파 분열용으로 활용해 친박 신당을 만들어 분열될 것이라는 게 비박계를 중심으로 퍼졌지만 친박계 다수 의원들이 황 대표를 지지해 당선되면서 그런 우려는 가시는 분위기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 2⋅27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한국당 내에서 심심찮게 돌던 ‘친박 신당’설은 현재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친박계 의원들이 황 대표를 지원하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황태자로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오른 바 있는 황 대표가 차기 주자로 부상하며 차기 정권탈환을 위해 여권 주자의 대항마로 키워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적극 거론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 판단이 친박 신당설은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황 대표는 사면 언급을 통해 보수층 지지를 결집해나가는 행보도 예상된다. 배박 논란을 잠재우고 박 전 대통령 열혈 지지층의 의심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황 대표를 겨냥해 ‘배박(背朴)’ 논란을 제기한 바 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배박 논란이 부담스러운 황 대표로선 이 전 대통령이 석방된 마당에 박 전 대통령 석방 문제를 외면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