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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을 기리며 ...
2019년 02월 23일 (토) 23:40:41 [조회수 : 1536] 노세극 press1@news-plus.co.kr
   
노세극 논설위원

1936년 2월 21일은 독립운동가요, 언론인이며 민족 사학의 비조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 순국하신 날이다. 57세의 나이로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신지 83년째 되는 2019년 2월 21일 오전 11시.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기념관 대회의실에서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주최로 83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단재 선생이 순국하신 장소인 여순 감옥에도 가 보았고 충북 청원군에 있는 단재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도 가 본적이 있었지만 추모식 참석은 처음이었다.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메웠다. 

추모식은 300여명이 대회의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국민의례에 이어 단재 선생 약력 보고, 유인태 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의 헌사,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추모사의 순으로 이어졌는데 추모사는 그 뒤로도 박유철 광복회장,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이부영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 사업회장, 이종찬 우당 기념관 관장등이 단상에 나와 차례로 발언했다.

대체로 이러한 행사들이 그렇지만 높은 지위에 있거나 명망이 높은 사람들이 나와서 의례적인 말을 하고 마치기 일쑤였는데 역시나 그랬다. 단재 선생은 격조 높은 글로도 유명하지만 한평생 말 그대로 치열하게 사신 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대의 다른 어떤 사람들 보다 뜨겁게 살다 가셨다. 뜨거운 피를 가진 인사들이 나와서 뜨거운 이야기를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도올 선생 같은 분이 와서 열정적인 추모사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어떻든 각설하고 추모사를 하는 분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 강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단재 선생의 역사의식과 민족혼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언론인 출신으로 한때는 민주화 운동의 주역 중 한명이었으나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원내 총무까지 한 이부영도 그렇지만 전두환이 만든 국가보위 입법회의에서의 활동을 비롯하여 민정당 창당에 관여하고 국회의원을 하는 등의 경력을 가진 이종찬의 추모사를 단재 선생이 듣는다면 선생의 심기도 불편하지 않았을까. 

단심의 열정으로 대쪽 같은 기개로 한평생 비타협적으로 살아온 단재 선생의 삶과 그들의 기회주의적 삶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종찬은 잘 알려져 있듯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답게 더욱이 단재 선생을 거론하며 역사를 운운한다면 어떤 삶이 역사에서 올바른 행보인지 그 스스로 더 잘 알 것이었다.

행사의 마지막은 역사 어린이 합창단의 어린 학생들이 나와 ‘독립군가’와 ‘단재의 노래’ 등을 불렀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약간 비감해 있던 터였는데 단재의 역사의식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계승된다고 생각하니 알지 못하는 뜨거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던 것이다.

만약 단재 선생이 옥중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왔다면 어땠을까? 미군정 3년 동안 친일파의 득세를 봐야했을 것이며 급기야 이승만이 대통령되는 것을 목불인견의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여순 감옥에서 병색이 깊어가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단재 선생을 보석으로 가출옥을 시키려했다.

그러나 보증을 서는 사람이 친일파로 알려진 친척임을 알고 단호히 거절한 단재였다. 그런 단재로서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 또한 이승만에 대해서도 이미 임정 시절에 가장 강력하게 이승만을 비판한 장본인이었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 먹으려 한다”고 이승만의 내건 위임 통치를 비판하였다. 아마 해방 후까지 계셨다면 백색 테러를 당하거나 정권으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아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친일파와 이승만의 아류들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단재 정신을 운운하려면 친일 청산을 말끔히 해야 하고 민족의 자주와 주체를 세우는데도 과감해야 한다. 오늘 정관계 인사들이 단재 선생의 정신 어쩌고 하지만 가장 거리가 먼 집단에 정치권과 관료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이제 머지 않아 있으면 3.1절이 다가온다. 올해는 3.1운동 아니 3.1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기념식을 비롯하여 여러 다양한 행사들이 예정되어 있다.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문이 낭독될 것이다. 그러나 최남선이 작성했다고 하는 기미독립선언문과 단재 선생이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을 비교해 보라! 조선혁명선언문은 단재 선생의 사상과 의지, 열정과 기개가 녹아 있는 명문으로 피를 끓게 한다. 이번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단재 선생을 기리며 조선혁명선언을 다시 한번 일독해주시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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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up kids in

추운겨울 따뜻하게 보내세요~ ^^

A mediocre at rotu

Сорокина Екатерина

가슴 따뜻하게 하는 뉴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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