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의 부인인 이멜다(89)가 부패 혐의로 최고 징역 77년을 선고받았다.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멜다는 산디간바얀 필리핀 반부패 특별법원으로부터 지난 9일 최고 징역 77년 선고와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법원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 집권 기간인 1975년 마닐라 주지사로 재직하면서 2억달러(2256억8000만원)를 스위스에 설립한 7개 재단으로 빼돌려 비밀계좌에 예치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그러나 인콰이어러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멜다는 선고 직후 "반드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고 보석 신청이 허용됐다.

검찰은 이에 따라 당장 체포영장을 집행하지는 않기로 해 구속을 피했다. 항소심 기간 동안에는 구속이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해 시간을 번 셈이다.

인권운동가와 야권 인사들은 이번 판결을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이멜다가 이번에도 면죄부를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마르코스 가문이 건재하고 막강한 재력이 있는 데다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멜다는 1993년 같은 법원에서 다른 부패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지만, 5년 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 연합뉴스는 인권단체 '카라파탄'은 마르코스 가문의 정치적 부활, 현 정부와의 친분 등을 거론하며 이멜다의 감옥행에 의구심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마르코스 가문은 마르코스가 독재자로 권좌에서 쫓겨났지만 이멜다와 그 딸과 아들이 정치활동을 하는 등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르코스는 1965년 당선된 뒤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집권에 나섰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물러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이멜다는 1992년 귀국해 대선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3연임에 성공한 현직 의원이다.

그는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인 딸 이미가 내년 중간선거 때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함에 따라 주지사 자리를 물려받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외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도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2016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했지만, 법원에 이의신청해 재검표를 끌어내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11월 마르코스의 시신을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하는 것을 허용해 친분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