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 201일째. 노사문제는 노사자율 원칙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한진중공업 사태는 사용자가 압도적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합의마저 내팽개친 결과, 노조원과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노사갈등을 넘어 사회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문제는 더 이상 노사만의 문제도, 부산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부는 더 이상 방관자적 태도를 버리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한진중공업 사측의 ‘선제적’ 정리해고에 주목하고 분노한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필리핀 조선소를 건설하고 주주배당을 하는 등 충분한 지불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노사합의를 깼다. 수십년 간 회사를 위해 일한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버리기 위해 고의로 영도조선소에 선박 수주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정리해고를 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국내외의 치열한 경쟁에서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일해 온 사람들을 소모품처럼 버려서는 안된다. 고용보장의 원칙 하에서 생산성 향상, 점진적 고용 조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노사협의를 즉각 재개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공정한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때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정당이 나서는 것이고, 정당도 미덥지 못하니 국민이 나서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가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방기한다면 정당이 또는 국민의 힘으로 바로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와대, 고용노동부, 노사정위원회 어느 곳도 지금의 심각한 사회적 갈등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희망버스를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고 여차하면 공권력으로 제압할 궁리에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공정한 중재자로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내는 노력을 다 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정치권의 조정으로 노사문제를 해결한 대표적 사례가 있다. 1998년 6월, 현대차는 2천7백여 명을 정리해고 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성난 노동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노동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노조가 수용하지 않자 정부는 공권력 투입을 고려하고 있었다. 큰 충돌로 비화된다면 국정이 마비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당시 노무현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합동중재단은 울산으로 내려가 노사를 설득하며 이견을 좁혀갔다.

공멸을 피해야 한다며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사측이 한 발 물러섰다. 끝까지 버티면 공권력으로 해결해주던 과거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였다.

결국 합의에 이르렀다. 해고 규모를 250~300명 선으로 대폭 축소했고, 나머지는 희망퇴직을 받는 신청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노사정 합의의 결과였고, 개인적으로도 보람이었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경영계는 정치적 외압을 통해 구조조정을 무력화했다고 비난했고, 노동계는 정리해고의 길을 열어줬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면 사태는 파국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대립하는 이해를 조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정치가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망설이지 않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국가는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노사자율을 핑계로 정치권의 개입을 힐난하고 있다. 개입하지 않는다고 중립인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신봉하는 ‘공정’도 아니다. 정부의 수수방관은 그 자체로 편파적이고 부당할 수 있음을 각성하기 바란다.

한진중공업은 그 모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군 조선공사이고 세계최강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주의 이해보다 근로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 성명서는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이 주도하는 '국민시대'가 김진숙 한진중공업 농성 201일째를 맞아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