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늘에서 종철이 만났능교?, 종철이 만났능교?"

"점퍼를 남에게 벗어주는 인정 많은 종철이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투사가 되었다. 구둣발로 경찰서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옳지 못한 판결을 한 판사의 멱살을 잡아 감옥살이도 했다. ......"

31일 박정기 선생이 영면에 들었다. 폭염에도 우리들의 아버지를 추모하는 이들은 떠나보낼 수 없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는 부친 박정기 선생을 이렇게 기억했다. "아부지 종철이와 밀려있던 이야기 밤새도록 얘기하세요"

우리들 모두의 아버지, 고 박정기 선생이 막내 아들 종철이 곁에 잠들었다.

31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 선생의 '민주시민사회장'이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거쳐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31일 엄수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선생의 서울시청 앞 노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아이폰6S 촬영>

유례없는 폭염으로 이날 낮 최고기온이 38도에 이르는 가운데 박종철 열사와 박종기 선생을 기억하는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노제에는 유족과 시민, 전국대학민주동문회 등 고인의 유지를 이으려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김두관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 바른미래당 김성호 의원이 자리를 지켜 고인의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공감했다.

이들 정치인은 진심을 담은 모습이 말로 하는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참석자들로부터 악수와 인사를 건네받았다.

광장 주변에는 "아버지 편히 쉬십시오 이제 종철이와 못다한 이야기 나누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수십개의 만장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원했다. 

노제는 박래군 인권재단소장의 사회로 이현주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약력보고에 이어 장례위원장인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대표의 조사에 이어 장순향 한양대 교수의 살풀이춤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과 장남수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장, 김세균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조사 순으로 진행됐다.    

고 박정기 선생의 노제가 진행된 서울시청 앞에 빈소가 차려져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사진 아이폰 6S로 촬영>

김영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박종철 열사의 희생은 잠들었던 민주주의를 깨워 30년 전 그날의 6월을 온통 민주주의로 물들인 거대한 신호탄이었다. 민주의 거리는 억눌린 노동현장으로 이어졌고 드디어 장엄한 7,8,9월 노동자들의 큰 망치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고 회상했다.

김 위원장은 "박종철 열사가 살고 싶었던 살고자했던 수백 수천의 날을 아들을 가슴에 안고 묵묵히 살아내셨다. 아들을 대신해서 수없이 많은 날을 탄압이 있는 곳, 희생당하는 자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함께 투쟁해온 너무나 많은 일을 해오신 우리의 큰 동지였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아직도 다하지 못했다', 가시는 길에 남기신 그 말씀 이제 남은 우리의 할 일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 아버님 떠나시기 전에 채 만들지 못했다"며 "박종철 열사의 항거와 항쟁정신이 1700만 촛불항쟁으로 더욱 밝게 타올랐듯이 민주노총이 70년동안 겹쌓인 이 땅의 모든 적폐를 걷어내고 새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더 힘을 내고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아버님의 나직하고 따뜻한 목소리,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 힘없고 빽없는 이 땅의 민초들은 민주주의 옹호자이셨던 아버님을 잃은 슬픔으로 목이 메이고 있다"고 애도했다.

아버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있다고 회고한 박 대표는 "야수와도 같았던 전두환 군사정권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막내 아들을 잃으신 아버님께서 '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 이 없데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폭제가 되어 6월 민주항쟁의 거대한 흐름이 물결치기 시작했다며 "정권교체에 실패하며 아버님 고난의 행진은 30년 간 더 지속됐다"고 했다.

박 대표는 "민가협 회장으로 활동하시며 전국의 투쟁현장, 특히 민주화와 민중생존권 투쟁 과정에서 헌신하신 열사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곁은 굳건하게 지키셨다. 이소선 어머님과 박정기 아버님께서 선두에 선 유가협의 부모님들께서 앞장서서 투쟁하신 결과, 30년간 고난 속에서 끝없이 헌신하시고 분투하신 성과로 비로소 작년의 촛불항쟁 승리와 촛불정부의 등장이 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박 대표는 "저희들이 오늘 아버님을 영결하는 한없는 슬픔 속에서도 한편으로 새세상이 열리는 새 희망 속에서 아버님을 보내드릴 수 있게 된 것이, 또 아버님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막내아들 박종철 열사와 하늘나라에서 해후하셔서 이 땅의 승리소식과 새로운 희망을 알려줄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마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박 대표는 "아직도 대한문 앞에는 차마 눈을 감지못한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피맺힌 외침이 울리고 있고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 앞 농성장에는 수많은 민중들의 절규가 팽만해있다"며 "아버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셨던 국가보안법 페지, 보안수사대 폐지, 그리고 양심수 석방이 아직도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과제가 살아남은 저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저희들이 힘을 합쳐 아버님이 못다 이루신 과제들 완수해내겠다 하늘나라에서 지켜봐주시고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세균 박종철 열사기념사업회이사장은 "오늘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본다"고 조사를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강제 화장당한 박종철 시신의 잿가루를 얼어붙은 강에 뿌리며 통곡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그 강을 찾아가 한없이 쓸쓸한 표정으로강을 바라보던 선생님의 처량한 모습을, 개인의 슬픔을 고통받는 모든 이의 슬픔으로 승화시켜 아들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30여년간 민주화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우실 때의 선생님의 모습을, 풍찬노숙의 살믕ㄹ 사시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자신을 내세움이 없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유월의 아버지가 되시고 아들의 동지가 되신 선생님, 박종철의 아버지에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신 선생님, 아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었고 우리 시대의 참 스승이며 큰 어르신이었다"고 추모했다.

김 이사장은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우리의 마음은 슬픕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아들인 박종철과 함께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염원과 함성 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영원히 그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제 그 고단했던 삶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박종철과 함께 민주주의 꽃동산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편히 영면하십시오"라고 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먼저 간 자식의 생명을 헛되이 하지 않고자 동분서주하며 살았던 그 시간을 누가 다 알겠나. 같은 아픔을 겪은 우리조차도 당신의 깊은 속을 헤아리지 못했다. 과묵하신 당신은 그 아픔을 그저 마음속에서만 품은 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자식들이 걸어갔던 그 험난한 길을 나섰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듬어주셨다"고 했다.

장 회장은 "누구는 철창 너머로, 누구는 길 위 집회에서의 당신을 기억한다. 저 역시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며 "재작년 겨울 보셨죠, 이 나라의 민주화를 바라며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며 생명의 촛불을 불태운 우리 아이들의 의지가 이어져 촛불혁명을 낳았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걸어오신 당신의 삶은 우리를 인도하는 등대와도 같았다"고 추억했다.

장 회장은 "촛불의 겨울을 나고도 아직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 이렇게 가시다니, 조국의 민주화에 바친 사랑하는 막내아들의 명예회복을 끝내 못보고 가시다니"라고 슬퍼했다.

장 회장은 "그러나 더이상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끝낸다면 유가협 동지로서 자격이 없겠죠. 아버님 한평생 가슴에 담아두셨던 모든 의지와 소망을 남아있는 우리가 슬픔을 모아서 이루어내겠다"고 맹세했다.

이어 장 회장은 "박종철 열사와 모든 열사들의 명예회복을 이뤄내고 언젠가 만날 때 후회없이 살았노라 당당히 말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장 회장은 "그동안 너무나 험난한 길을 걸어오셨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 벌써 그립고 앞으로 그리워 할 일만 남았다는게 아픔이다"고 박정기 선생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백기완 선생은 앞서 부음 소식을 듣고 발표한 조사에서 "박정기 선생님 정말 원통합니다.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 겠다는 우리들의 절실한 요구가 아직도 막연한 이 판에 선생님께서 먼저 떠나시다니 정말 원통합니다. 박종철이를 학살한 그 개망나니 xx들, 그들이 아직도 틀어쥐고 있는 이 분단체제, 억업체제를 발칵 뒤집고 박죵철 열사를 죽인 놈들을 몽땅 청산할 때까지 선생님 눈을 번쩍뜨고 한걸음 한걸음 또 나아갑시다"라고 했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이라는 8월의 폭염도 시민들의 추모의지를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