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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을 생각한다
2018년 07월 27일 (금) 23:44:51 [조회수 : 9938] 뉴스플러스 press1@news-plus.co.kr

믿기지 않았다. 너무도 큰 충격이었기에. 지인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또 뉴스 속보를 통해 소식을 접했음에도. 그리고 다음날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빈소에 가서 조문을 했음에도. 오늘 영결식이 치러졌음에도.

   
      노세극 논설위원

노회찬. 도대체 그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것도 아파트 17-8층 높이에서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생을 마감했을까?

그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사회운동 특히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했을 것이다.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보다 행복하게 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꿈과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정치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치로 인해 자신의 생을 비극적으로 마쳐야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적 연민과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진보정치의 장에서 같이 몸담았고 한 때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았던 나로서는 가슴이 아려왔다.

내 심정이 이럴진데 그와 노선을 같이 했던 동료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부음을 접한 월요일 밤에 한 후배가 안동소주를 들고 와 “회찬이 형!”하고 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노회찬과 같이 활동하여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노회찬의 노선에 비판적이었고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 때부터 그를 보았고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 만나는 정도였다. 회의에서 그의 발언을 접하며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강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는 감성적이기 보다는 이지적이고 냉철하여 때로는 계산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주도하려 하였고 그렇지 못하면 불편해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런 그의 태도로 인해 주변에는 경계심도 있었고 마뜩찮아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는 촌철살인의 풍자와 비유로 진보정치를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였으며 현실 정치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안겨주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TV 토론에서 유명한 ‘불판론’을 제기하는 등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많이 남겼다. 아마 진보정치권에서 미디어의 속성을 잘 알고 그에 대해 잘 준비한 사람은 그가 유일한 것 같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정치인으로 성장했으니까 말이다. 진보정치 진영에서 그처럼 언변이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는 말을 잘 하는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본연의 기능인 입법활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호주제폐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그의 손을 거쳐간 법들이 많았다. 오늘 우리는 한국 정치현실에서 실력과 재능을 갖춘 아까운 정치인 한 사람을 잃은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정치적 자산을 잃은 것이나 한가지다.

그러나 나는 그를 좋은 정치인, 훌륭한 정치인으로 보지만 그를 지도자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면서 그는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고 최고위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 당시 그는 “유럽에서 100년의 역사를 가진 진보정당들이 있다. 우리도 앞으로 100년을 가는 당이 되도록 하자” 라는 요지의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당은 10년이 채 되기도 전인 2008년 분당되고 4년 후에 겨우 합쳤다가 또 분당이 되어 내파되었다. 두 번에 걸친 분당에 그가 중심에 있었다. 그가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나섰더라면 당이 쪼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필자의 글에서 노회찬이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었다고... 그를 떠나도록 한 자들의 머리털을 뽑아버리고 싶다고 하는 대목을 읽었다. 노회찬이 옳았고 노회찬과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로 접근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가장 최선의 선택은 당이 쪼개지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만약 노회찬, 그가 당의 분열을 막는데 나섰더라면 그렇게 쉽게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통합적 지도력이기 보다는 한 정파의 지도력으로 만족한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당 대회가 열리던 현장에 대의원이 아니었음에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당의 단결보다도 정파 간의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을 보고 암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세력도 문제가 있지만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조직을 뛰쳐나가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이후 어렵게 다시 모여 이름도 통합진보당이라고 간판을 걸었지만 역시나 내재된 정파 간의 갈등으로 또다시 분열을 하게됐다. 지금 정의당과 민중당으로 갈라져 서로 견원지간처럼 지내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무당파로 지내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2008년 분당은 뼈아픈 것이었다. 이제 와서 만약 운운해봐야 쓸데없는 것이지만 만약 그 때 당이 분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통합진보당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고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당은 우여곡절을 거쳤겠지만 비약적인 성장해왔을 것이다. 

우리도 100년의 역사를 갖는 진보정당 하나 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노회찬의 꿈과 비전이 현실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의 중심 인물 중의 하나인 그가 당의 분열을 막고 보다 큰 정치를 하였더라면 오늘 이와 같은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있는 것이다.

그의 유서를 보면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유서인 만큼 진실일 것이다. 결국 4,000만원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하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당시 그의 처지가 그 정도로 절박하여 그런 돈을 받지 않았으면 안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라 하더라도 댓가성은 아니라고 하니 좀 길게 보고 감당하면 안되었을까? 말 못할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자존심과 결벽증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것일까? 왜 노동운동가 출신답게 노동자들로부터 재정적 후원 즉 물적 토대를 마련하지 못했을까?

4천만원을 받은 것은 그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의 과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잘못으로 목숨까지 버렸어야 했나? 그러나 그의 잘못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대하는 그의 처절하고 결연한 행동이 동시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죄 없는 자 저 여인을 돌로 쳐라’라는 예수의 말처럼 혼탁한 정치판에서 그를 단죄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그의 영결식이 있은 오늘. 그와 대척점에 섰던 보수 언론도 보수 정객들도 그를 기리고 그의 삶과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만약 그가 살아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검찰에 불려다녔다면 그들은 아마 온갖 비난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것은 물론 이중인격의 파렴치범으로 몰아 난도질을 했을 것이다. 그의 대중적 신망은 떨어졌을 것이며 그가 몸담은 정의당도 덩달아 추락해갔을 것이다. 아마 그는 이런 사태를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된다. 살아서 죽음 보다 못한 모욕을 받기 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죽음으로서 육체적 생명은 잃었지만 정치적 생명은 영속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정치인 이전에 운동가였던 것이다.

그의 죽음에 오버랩되는 사람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다. 너무도 흡사하다. 돈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고 이로 인해 부엉이 바위와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라는 장소는 달랐지만 투신을 하여 목숨을 끊었다는 점, 죽음 이후 지지했던 지지하지 않았던 간에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훔치게 하고 애도를 한 점 등등.

노무현의 죽음 이후 그를 따르는 세력들이 권토중래하여 결국 정권을 잡게 된 것처럼 노회찬 이후 수많은 노회찬이 나와 정의당이 수권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내에 정의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현실화될 것인가?

그것은 그가 굴리다 못다 굴린 돌을 굴릴 사람들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그가 유서에서 당당히 앞으로 나가라고 한 것처럼 .... 역사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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