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직업 집단 중 의무 외의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수단으로 정치인은 권력, 군인은 무력, 법조인은 법, 의사는 생명으로 그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지켜왔다.

반면 건축가는 달랑 사명감으로만 무장한 채 자신의 섬세한 감성의 샘을 짜내어 밤새워 자신을 연마해 왔다.

스스로 보람으로 사유와 철학의 보따리를 챙겨가면서. 건축가는 사회와 대등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명분을 스스로 지니지 못한 예술집단의 하나로 문화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 "한국 건축의 항구성"을 말한다면 한국 사회가 인식하는 건축의 포괄적 의미 가운데 정책적 지위와 사회적 인식에 직결된 '경제 결정행위' 행태로 나타나는 속성에 따르는 현실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재, 관치행정 주도로 이끌어진 한국의 근대화는 다분히 다급한 성과 위주일 수밖에 없었고 건축, 문화, 예술계의 근대화에 따른 '한국성' 재고의 과정은 있었으나 그 또한 관치 통제의 획일적 결과물을 양산하는 과정의 시대를 함께 하며 표현되었던 것이다.

더하여 독재시절 정책에 반하는 건축가의 건축, 도시 비평은 정치적 도전으로 취급되어 외국으로 추방되는 무례한 일도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지혜의 창구를 폐쇄당한 건축가가 자유롭게 설 위치는 없다. 그러나 사회가 우리에게 권력과 금권의 시녀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나는 여기서 데카르트를 인용한다.

"사유하고 있는 이 순간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김순도. 건축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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