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치 신선놀음, 손학규 한계인가

3년만에 열린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

원내 제1야당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이렇게 한가한 정치한량인 줄 미처 몰랐다. 참으로 안타깝고 어이없고 기가 막힌다. 삼년만에 열린만큼 국민적 기대가 컸던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이 국정현안 가운데 어느 한가지 똑부러지게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속빈강정이나 다름없는 거품회담이었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6월 27일 아침 7시30분부터 9시35분까지 2시간 5분에 걸쳐 진행된 조찬을 겸한 회담결과에 대해 배석했던 청와대 김두우 홍보수석과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이 발표한 공동 발표문을 보면 그럴듯한 수사로 나열한 쭉정이 회담이었다.

이날 두 사람은 가계부채, 저축은행 사건, 일자리 창출, 반값 대학등록금, 추경 편성, 한미 FTA 등 주로 민생분야를 의제로 자신의 인식에 바탕한 입장 개진에 치중하였을 뿐 합의를 통한 옥동자를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먼저 상환능력이 위험수위에 도달할만큼 심각한 국가경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가계부채에 대해 평소 정부가 대책이랍시고 내놓았던 내용들을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만들어 최대한 빨리 마련해 발표하고 여기에 가계부채 규모 적정수준 관리, 가계부채 줄이는 방안을 넣도록 한다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것으로 끝냈다.

일자리 창출분야 논의 결과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발등에 불일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데도 "일자리 창출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는데 공공부분이 솔선수범한다"는 두루뭉술한 말장난식 총론에 구체적인 해소 대책인 각론은 아예없다. 잡담수준의 합의 내용에 청년백수들의 분노가 극에 달할 전망이다.

요즈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대학 반값 등록금 문제도 그렇다. 손학규 대표는 반값 등록금제 추진 당론과 달리 이명박 정부가 주장했던 "대학 등록금 인하가 필요하고 대학 구조조정이 병행 추진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해주는 것으로 입을 맞춰 주었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과 관련하여 교육은 백년대계인 만큼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 나가기로 했단다.

'반값 등록금'이란 단어는 아예 발표문에 언급조차 없는데 무얼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겠다는 것인지 괴이하기 짝이 없다. 결과적으로 손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단계별 인하, 대학 구조조정 병행 방침에 맞장구 치며 "옳소"한 것 외에 얻어낸게 아무것도 없다.

손대표는 가계부채, 일자리, 저축은행, 대학등록금 문제에 대해 합의 또는 맞장구를 쳐준 대가로 하반기 등록금 부담경감, 구제역 피해 복구, 일자리 창출, 태풍으로 인한 재난 복구용 추경 예산안 편성을 이대통령에게 요구한 모양이지만 이대통령은 국가 재정법상 추경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회담의제에 대해 얻을 걸 다 얻은데다 한푼이라도 예산을 짜낼 수 있다면 예산먹는 하마 낙동강에 쏟아부으려는 이대통령으로서 들어줄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나마 손대표가 맞짱을 뜬건 한미 FTA국회 비준과 관련하여 이대통령이 국가 장래를 위하는 일이라며 국회통과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데 대해 "정부가 국회에 재협상하여 제출해 놓은 FTA비준안은 양국간 이익균형이 크게 깨져 재협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시한 것 정도다.

이명박의 정치적 승리로 끝난 일방적 회담

회담결과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손학규 대표측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분명한 가시적 성과를 도출해낸 금번 회담결과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도 "민생현장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전달해 청와대가 친서민 중심으로 바꿔 나갈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에서 큰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용섭 대변인의 억지춘향식 자화자찬과 달리 민주당 일각에서는 "추가경정 예산안도 확보하지 못한데다 반값 등록금, 한미 FTA에서도 성과가 없는 무의미한 회담"이라는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다른 야당들도 손학규 대표에 대해 성토일색이다. 민노당은 "손학규 대표의 어설픈 협상 행보가 국민들을 더욱 실망시키고 낙담시켰다"며 직격탄을 날렸고 진보신당도 "뚜렷한 해법이 나올거라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자유선진당 역시 "아무런 성과도 없는 반쪽짜리 회담이었다"고 혹평했다.

민주당 일각과 타 야당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결론적으로 2008년 9월 25일 이대통령과 당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간 여야 영수회담 이후 2년 9개월만에 열린 이번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간 여야회담은 실패작이 확실한데도  일부 언론은 이대통령의 '임기 말기 안정적 관리'와 손대표의 '민생지도자' 이미지 구축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들어 양측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회담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이러한 친정부적 긍정적 평가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정국 관리용 스파링 파트너를 자청한 손학규 대표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나홀로 승리를 거둔 효과만점 회담이었던데 반해 손학규 대표는 본전 찾기는 고사하고 이대통령에게 정치적 승리를 봉헌한 굴욕적인 회담이었다고 보는게 옳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이 "3년만에 만남이 이뤄졌으니 거기에 자족을 느껴야한다"고 은전 베풀 듯 여유까지 부린데서 보듯 이대통령은 거듭된 천안함-연평도 안보국난, 구제역 창궐, 저축은행 사태, 반값 등록금 문제, 남북관계 파탄 등 총체적인 국정난맥에다 한나라당 신주류 반란으로 레임덕이 조기 가시화 되는 등 사면초가의 정치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여야회담 결과는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게 만들어준 구세주나 다름없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번 회담으로 이대통령은 레임덕을 어느정도 차단할 수 있게 되었고 보수진영에 신뢰감을 심어주었으며 국정장악, 정국 주도권 회복, 야당과 직접 협상통한 한나라당내 신주류 견제, 손대표에 대한 민주당 내부와 야권내 회담실패 반발을 유도 손대표의 대권 경쟁력 약화 등 기대이상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 청와대가 여야회담을 활용할 경우 야당의 불응으로 회담이 무산되더라도 야당과의 소통정치 활성화 시도 노력 인상을 심어주어 여론형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에 정국 주도권 봉헌한 손학규 대권후보 자질 한계 보여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손학규대표는 야당이 한목소리로 실패한 회담이라고 혹평한데서 보듯 손대표의 측근이 "한번 만나서 큰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지도자끼리 머리를 맞댔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첫술에 배부르랴는 식의 방어막을 폈지만 이는 패배자의 슬픈 자기합리화식 변명에 불과하다.

지금 국내정세는 한마디로 민주주의, 민생, 남북긴장 등 국가존망 상황에 버금가는 백척간두의 위기사태에 놓여있다. 첫술 운운할만큼 여유가 없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은 임기말에 접어든데다 국정파탄으로 국민의 신임을 잃어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권을 상대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끌려 다닐 수준의 정치력이라면 총선 승리는 물론 정권교체도 이루어 낼 수 없다.

국가위기 상황하에서 정파를 초월한 동반자적 국정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손학규 대표의 선제적 여야 영수회담은 나무랄데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국가 위기상황은 민주당 등 야당에서 비롯된게 아니라 오로지 이명박 정권의 국정무능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손대표가 회담을 요청한 이상 손대표는 회담을 통해 야당의 정체성인 선명성과 투쟁성에 바탕하여 이명박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묻고 최소한 반값 등록금, 청년 일자리, 추경편성 문제 만큼은 관철시켜야 했다.

그러나 손학규 대표는 성과를 이끌어 내기는커녕 최소한 야당 대표다운 면모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오죽하였으면 신선놀음 하러 청와대 갔느냐는말이 나오겠는가. 손대표는 회담 실패를 통해 미래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 덕목과 관련해서도 심각할 정도로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 3년만에 이루어진 여야 영수회담을 민생문제로 한정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민생문제 해결이 급선무이긴 하지만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독선적 역주행, 공안 통치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대북 강경책으로 남북 관계가 파탄나고 이로인해 야기된 전면전 일보 직전의 긴장 상황을 고려하여 국가안보, 남북문제를 반드시 의제에 포함시켰어야 했다.

국가 비상 시국하에서 모처럼 열린 여야 영수회담에서 안보, 남북문제가 빠지면서 이명박 정권의 안보무능, 남북파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손대표 개인으로 볼 때는 민주당 대표로서의 정체성, 협상력과 통찰력, 안보의지, 남북평화 등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로서 자질과 덕목을 갖추었느냐 하는 점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남겼다.

손대표가 보여준 것이라고는 실패로 끝난 영수회담을 선제적으로 제안한 결단력 정도라는 말이 나돌 지경이라면 어느 누가 손대표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택하겠는가. 손대표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실패를 자초한 이번 영수회담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자질과 정치력, 국량이 이 정도라면 정권교체를 이루어낼 민주당 대선후보로 함량미달을 자인하고 하루라도 일찍 2선으로 후퇴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최소한 민주진영과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여야 영수회담 결과에 대해 손대표는 진솔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도리임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