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의 외침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배반했다. 우리는 사드 강행배치는 더 이상 박근혜 정권이 아닌 문재인 정부의 적폐임을 분명히 한다. 8천 명이 넘는 공권력을 한밤중에 동원하여 사드 배치를 강행한 오늘은 문재인 정부의 폭거로 기억될 것이다"

노세극

박근혜 정부처럼 야밤에 배치하지는 않겠다는 일말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애초 기대할 수 없는 약속을 남발했다. 사드 배치 과정 진상조사하겠다, 절차적,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겠다, 국회 동의를 받겠다는 약속들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해 주민들과 함께 하겠다던 민주당 의원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헤아릴 수 없는 경찰의 군화발 소리만 소성리를 뒤덮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각오하라. 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 국민이 달리 선택할 길은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한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배치가 강행된 사드를 끝내 이곳에서 철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더불어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존엄성을 훼손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력한 항의도 이어갈 것이다.

비록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은 막지 못했지만, 지난 18시간 동안 이곳을 지키며 기세 있게 싸운 것은 사드를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이들의 분명한 승리다. 사드를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진 모든 분들과 함께 사드를 뽑아내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길게 인용한 위 규탄기자회견문은 지난 9월 7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성주리에서 울려퍼진 외침이었다. 사드를 반대하는 국민이 비단 성주 주민들뿐이었을까?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거나 의구심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이러한 여론을 묵살하고 물리력을 동원하여 그것도 심야에 많은 부상자를 내면서까지 강행하였어야 했는가? 촛불로 등장한 민주정부가 맞는가? 소성리의 외침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최초의 규탄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는 소성리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인가?

여론이 나빠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밤 ‘사드 배치 관련 대통령 입장‘을 발표하였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 전쟁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에 대한 방어능력을 최대한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어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판단하여 배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사드가 북핵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반도에 전쟁불안을 가시게 한다면 정말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중국의 거센 반발로 중국의 위협까지 감내해야 하는 불안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 온 바이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픈 지경이다.

이제는 북의 미사일 뿐 아니라 중국의 미사일도 성주를 겨냥하고 있을테니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다. 정부는 '최선의 조치'를 했는지 모르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이 입장 발표문에는 '임시배치'라는 단어가 3번이나 나온다. 이미 시행한 소규모 환경평가가 아니라 일반환경평가 후에 최종 배치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임시배치라고 하지만 사드배치는 기정사실화되었다. 일반환경평가는 절차적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탈한 성품대로 대국민 사기극을 일삼은 이명박 박근혜와 달리 정직과 신뢰의 정부가 되길 바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던가?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안 되는구나 하고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실종된 소신의 정치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지금까지 고공행진을 해 온 것에 대해 무척 고무되어 있는 것 같다. 정치란 모름지기 국민여론에 민감해야 하고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임기 초반이고 하니 적폐청산 등 시대적 과제들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부자 몸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보수층을 의식한 때문인지 문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 6일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블라디보스톡으로 간 문재인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해 주도록 러시아에 요청하였다. 그러자 푸틴은 북핵 문제는 제재와 압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며 러시아가 북에 주는 석유는 1년에 4만톤 정도로 수출량이 미미하다며 원유 중단을 하게 되면 병원 등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힐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하였다.

인간 문재인 보다 푸틴이 훨씬 인도주의적 정치인으로 비쳐졌다. 그리고 역시 블라디보스톡에 온 바트톨가 몽골 대통령과도 만나 유엔에서 북에 대해 원유 공급 중단을 결의할 때 몽골에서 적극 협조해 달라고 하였다. 몽골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고 자신들도 외몽골(지금의 몽골)과 내몽골(중국에 편입됨)로 분단된 나라로서 아픔을 이해한다고 답하였다. 중⋅러와 밀접한데다 북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몽골이 한국의 요청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외교는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원유 공급 중단은 미국의 요구인데 고강도의 압박과 제재를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으니 미국의 압력 때문인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의식한 보수층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인가?

그런다고 보수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8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자. 그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제재·압박을 강조하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정치적 위기국면에서 단지 페인트 모션(Feint motion·속임수 동작)이고 제스처일 뿐"이라며 자신과 자신의 지지자들은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드를 배치해도, 원유 공급 중단 등 북에 대해서 고강도의 제재를 하자고 해도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기란 어렵다. 조선일보를 보라. 문재인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여론을 의식하여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이 아니라 강단과 소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나

문 대통령의 소신은 무엇인가? 사드 배치도 원유 공급 중단 발언도 그의 소신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이 있다. 상황논리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술이라고 보는 것이다. 시사인 남문희 기자가 쓴 글이 회자되고 있다. 이를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알려진 김경수 의원이 페이스북에 인용하면서 뉴스를 타고 있다. 그 중의 한 대목이다.

"문통은 지금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 국가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 함부로 취급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다. 기는 것 뿐 아니라 미국이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장면이 전혀 이해가 안가는가? 나는 문통이 대북 압박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게 절대 자기 개인의 의사만으로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

이런 글을 보면 참담해진다. 묻고 싶다. 누가 미국의 가랑이 밑으로 들어가라고 했는가? 누가 미국이 짖어라면 짖는 개가 되라고 했는가? 일제 시대 친일부역자들의 논리와 똑 같다. 이런 식으로 할거면 대통령하지 말았어야 했다. 정말 이런 꼴을 볼려고 한 겨울 내내 촛불을 들었나....

북을 적으로 놓고 대처하는 한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 처지를 보자. 맨날 북핵 타령하다가 북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경제마저 어려워지고 있지 않는가? 장사꾼인 트럼프의 장단에 놀아나 미국 군산복합체의 봉으로 전락한 신세임에도 고가의 미국의 첨단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분단이야말로 쌓이고 쌓인 적폐이다. 우리는 분단체제를 허물어뜨릴 지도자를 갈망해 왔다. 분단체제에 적지 않은 책임을 갖고 있는 미국과 분단에 편승한 내부 기득권 세력과 싸울 각오가 있어야 한다. 3.8선을 베고 누울지언정 분단국가는 안된다고 했던 김구 선생의 기개를 문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단 말인가. 국민은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분단과 맞설 배짱도 용기도 없는 것 같다. 관점도 접근 방법도 잘못된 것 같다. 우리는 사드나 원유 공급 중단을 외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고 외치는 진정한 민족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촛불 혁명을 배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자칭 촛불정부라고 부르는 정부를 향해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지난 토요일부터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이 시작되었다.

<노세극 (4.16 안산시민연대 상임대표 / 본지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