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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살면서 피는 물 보다 진하고 형제임을 실감했어요"
<72돌 광복절 기념 인터뷰> 대구 사는 평양시민 김련희씨, 탈북자 중 귀환 희망자 많아, 언론이 가장 큰 범죄자
2017년 08월 15일 (화) 14:18:41 [조회수 : 9397] 노세극 press1@news-plus.co.kr

8.15 광복절은 국가기념일로 일제 하의 암흑천지로부터 빛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로 국가주권을 회복한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을 맞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 분단이 시작이 된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72년이 되도록 분단장벽은 여전하고 정세는 더욱 엄중해졌다. 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식민지로 겪은 고통에 버금가는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광복이란 분단을 극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떻든 72돌 광복절을 맞아 분단의 피해자로서 분단장벽을 깨트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분을 만났다. 평양에서 온 아줌마 김련희 씨다.

   
 

 
김련희 씨와는 지난 7월 21일 안산에서 강연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됐다. 그 때 전문 강사 뺨치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청산유수로 말씀을 잘하는데다 갖가지 질문에 거침없이 아주 핵심적인 내용을 답해 참석한 청중들로부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금 김련희 씨는 12명의 식당 여종업원 처자들과 더불어 북측에서 남북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8월 13일(일) 밤에 수원에서 통일 선봉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련희씨를 만났다. 장소는 수원 권선동에 있는 갈릴리교회에서 열린 통선대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끝낸 김 씨가 시간을 냈다. 밤 9시 50분경 이후 약 40분간 진행됐다.

인터뷰는 준비한 열 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광복절을 북에서는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기념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북에서는 8.15를 어떻게 경축하고 있나?

북에서는 8.15를 해방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공휴일은 아닙니다. 7월 27일을 전승기념일이라고 하여 국가명절이고 공휴일로 비중이 더 크다.  

- 통일선봉대에 들어가서 젊은 청년들과 같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해서 들어가게 되었으며 참가하여 활동한 느낌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통일선봉대에 들어온 계기는 황선 통선대장이 명예대원으로 이름 올려도 좋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명예대원으로 할 게 뭐 있느냐 직접 참가하겠다고 하여 들어오게 됐다. 

그간 강연 요청 등이 많아 처음부터 하지 못하고 어제부터 대원으로 같이 활동했다. 어제(12일)는 미 대사관앞에서 집회를 하였는데 트럼프 막말에 대해 규탄하고 싸드 철회와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미 대사관에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통선대원으로 같이 활동해 보니 통일운동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 뿌듯하고 자부심과 긍지가 생긴다.

   
 

이어서 그간의 남녘 생활은 어땠는지 질문했다. 올해 49세인 김 씨는 43년간 북에서 살았고 남에서 6년째 거주하고 있다.

- 남에서 살면서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고 적응하기 많이 힘들었을텐데요.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 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좋은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

남녘으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단 한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망망대해에 있는 섬에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대구에 정착하게 된 것은 북에서 양복 재단사로 일했기 때문에 패션의 도시라고 하여 가게 되었는데 막상 그런 계통의 일자리는 찾을 수 없었고 겨우 플라스틱 재활용업체에 들어갔다. 그러나 경찰이 회사로 자주 출입을 하자 부담을 느낀 사장이 나가달라고 해 1년 정도 근무하다가 나왔다.

   
 

그간 밀항을 시도하기도 했고 여권을 위조하려고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남으로 들어와 국정원에서 교육 받을 때 처음부터 돌려보내달라고 했기 때문에 신원특이자로 분류됐는데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첩으로 몰려 국가보안법으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고 그런 와중에 민변과 연결이 되고 뉴스타파와 한겨레에 보도되기 시작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양심수후원회와 연결이 되어 대구에서 활동하는 분들과도 알게 됐고 그 뒤로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는 분들을 만나게 됐다. 남녘의 좋은 분들과 알게 되고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이 큰 힘이 됐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또 가장 보람되고 의미있는 시기였다.

그리고 뉴스플러스 독자를 위해서 남으로 오기까지 간단한 약력을 물어 보았다.

-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었지만 아직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자랐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며 어떻게 하여 남으로 오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1969년에 평양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4년 중고등 6년을 마치고 4년제 전문학교인 피복고등전문학교를 나왔다. 김형직 사범대학과 김책 공업대학의 양복재단사로 일했으며 결혼 후 군 복무를 하는 남편을 따라 10년간 지방에서 살기도 했다. 남편이 군 복무를 하는 중에 부상을 입게 되어 제대하게 되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재 남편은 김책공업대학의 내과의사로 있으며 딸이 하나 있는데 졸업 후 여명거리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남으로 오게 된 것은 산동성 위해시에 사는 사촌 언니를 만나러 나왔다가 간에 복수가 차 치료를 받게 됐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으로 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탈북자 브로커 말에 속아 돈을 벌고 다시 나와야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게 되어 오게 되었습니다.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오는 과정에서 속았다는 생각에 안 가겠다고 하였으나 여권을 빼앗겨 할 수 없이 따라 오게 됐다.

- 남과 북에서 두루 생활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셨는데 남과 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만 서로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점이 있나?

남과 북은 달라도 너무도 다르다. 남은 철저히 개인화된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느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많이 이야기하여 자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다. 인간의 자유란 무엇인가? 참 자유는 무엇인가? 개인 이기주의를 자유라고 하고 동물적 쾌락을 좇는 것을 자유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녘 사회에서 저는 인간적인 존엄, 명예, 자긍심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반면에 북은 국가관 조국애가 철저하고 조선민족제일주의, 내 나라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남과 북과는 가치관이 많이 다른데 남에서는 자기 밥그릇 중심으로 보지만 북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밥 그릇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남에서의 생활은 매일 매일이 드라마 같습니다. 일 끝나고 와서 촛불을 들기도 하고 농성도 하고 모임도 많고 뒷풀이도 1차, 2차를 하는 등 하루 하루 너무도 역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에 북에서는 매일 짜여진 생활을 합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술도 매일 보는 동료들과 일과 후 마십니다. 정상적이고 안정된 생활이지만 북에 돌아가면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남녘 생활에 비해 재미는 없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현재 초점이 되고 있는 송환문제에 대해 물어봤다.

- 지금 평양 당국에서는 김련희 씨와 식당 여종업원 12명을 송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갈 수 있는 전망은 있다고 보시는지요?

- 시간이 더 걸리느냐 덜 걸리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가게 될 것이라고 본다. 가급적 빨리 돌아가고 싶다.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고리라고 생각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놓치지 말고 송환을 함으로서 남북관계를 회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은가?

부모님이 가장 많이 보고 싶다. 사람들은 딸을 가장 보고 싶을 거라고 하지만 딸도 보고 싶지만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드리고 또 어머님이 실명이 진행된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 완전 실명을 하기 전에 한시바삐 만나 뵙고 싶다.

- 북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생활할 계획인가?

북에 가게 되면 나중에 남녘 분들이 오게 되면 평양 시내를 안내하고 견학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남녘에 사는 6년 동안 힘들었지만 혈육처럼 따뜻하게 대해준 동포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 다닐 생각이 없다. 국정원에 대해서 미운 감정도 많았지만 그들도 분단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니 미움과 증오도 사라졌다.

- 최근 탈북자들 중 북으로 간 사람들이 여럿 있음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탈북자들 가운데 북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있다고 보시는 지?

남녘에 사는 탈북자의 현재 처지는 다문화 가정이나 조선족 보다 못한 더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탈북자들 중에 남으로 온 것을 후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때로 격려의 전화도 와서 우리의 희망이니 주저 앉으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청와대 앞에서 송환 요구를 하며 1인 시위하는 사람도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나온 사람들이 많은데 어려울 때 나온 고향을 지금 사는 형편이 좋아졌다고 해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가고 싶어도 선뜻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 생계문제와 무서움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 통일은 어떤 식으로 가능할 것 같은지요? 통일을 위해서 남의 민중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70여년 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상처였다. 남과 북이 너무도 서로 모른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잘 보여주면 되는데 현실을 왜곡 하고 있다. 특히 남쪽의 언론이 가장 큰 범죄자들이다. 제대로 알려주면 인민들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있는 그대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과 북의 인민들이 자주 만나야 서로 잘 알게 된다. 남녘에 살면서 피는 물 보다 진하다는 것, 남녘 동포와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다. 사상, 이념, 체제를 초월해서 8천만 민족이 하나되어야 한다.

4.3, 5.18, 경산코발트 광산 현장을 다녀봤는데 분단 비극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고 그에 비하면 나의 아픔은 모래알 보다 작다고 생각했다. 통일은 자주적, 평화적으로 되어야 하고 반드시 미국을 몰아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는데 미군이 있는 이상 통일이 안됩니다. 그리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통일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간의 삶의 역정을 수기로 책을 펴냈으면 좋겠다고 하자 8월 15일 오후 1시에 서울시청에서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6.15 출판사 간행) 라는 제목의 책 출판 기념식을 갖는다고 했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분단에 맞서 싸운 우리 시대의 한 사람을 기억하고 연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김련희씨가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고향으로 가는 것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평양시민 김련희 씨를 평양에서 만나 평양 시내를 탐방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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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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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116.XXX.XXX.49)
2017-10-06 19:54:08
우리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다이나믹 코리아인 동시에 어글리코리아~!!!!
우리 대한민국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다이나믹해지지만 동시에 어글리한 추태들이 점점 더 생겨나는건 식은죽먹기죠~!!!! 하기야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머나먼나라인 미국은요? 말을 마세요~!!!! ㅡㅡ;;;; 멋내기 좋아하고 먹기를 좋아하고 좋은집 살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대한민국이 좋죠~!!!!(미안해요~!!!!)
박혜연
(116.XXX.XXX.49)
2017-08-25 16:02:54
역시 극우보수성향의 탈북엄마인 이순실씨가 보면 김련희씨 개죽음 당하기는 마찬가지~!!!!
2년여전 신은미토크콘서트 사건때 재미교포 아줌마 신은미씨를 고소했던 극우보수성향의 이순실씨도 김련희씨에 대해 당연히 100% 완전 안좋게 보는거 다 알고있어요~!!!! 물론 탈북여성들마다 증언이 달라서 다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련희씨 어떤강연을 하시든지 조심하셔야되요~!!!!
박혜연
(116.XXX.XXX.49)
2017-08-25 15:58:30
통일맘연합회 김정아씨가 알면 김련희씨 두들겨맞을까봐 걱정되네요?
극우보수성향의 탈북방송인이자 속시원한 세면기를 만든 발명왕이자 탈북엄마단체인 통일맘연합회 대표 김정아씨가 이사실을 알면 김련희씨 집에 쳐들어가 폭언을 일삼을까 걱정됩니다~!!!!
우리의소원
(211.XXX.XXX.186)
2017-08-17 08:15:44
새정부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운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
소원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콱 막힌 남북관계와 한반도에 드리운 북미간 전면대결 직전의 위기상황에서 남북화해 평화의 창이 열리기를 ....
전체기사의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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