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2 토 16:07
> 뉴스 > 사회 > 사건 | 포토뉴스
     
4대강사업, 전쟁상흔 '호국의 다리' 붕괴 불렀다
2011년 06월 25일 (토) 18:50:17 [조회수 : 772] 김용수 yongsu16@paran.com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인 경북 칠곡군 '호국의 다리'(옛 왜관철교) 일부 구간이 붕괴되면서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4대강사업 과정에서 보강공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오전 4시10분께 경북 칠곡군 약목면 관회리에 있는 호국의 다리 중 약목 방면 2번 교각이 무너지면서 상판 2개와 다리 위쪽 철구조물이 함께 붕괴돼 다리 전체 467m 가운데 100m 가량이 유실됐다.

   
25일 장맛비 속에 왜관철교(호국의다리) 2번 교각이 무너져 상판과 철구조물이 엿가락처럼 물속에 쳐박혔다. 4대강 사업 준설을 하고도 교각보강을 하지 않아 인재라는 지적이다.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사고 부위는 준설과정에서 시공사가 보강하지 않은 교각이 붕괴됐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 바닥을 준설하고 교량 기초를 보강하면서 경북 칠곡군 소재 '호국의 다리'(옛 왜관철교) 일부 구간은 보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호국의 다리 교각 9개 중 보강하지 않은 교각이 무너지자 4대강 사업 추진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5일 새벽 무너져내린 왜관철교를 한 주민이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국토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말 칠곡 구간을 담당한 시공사를 통해 낙동강 위에 놓인 다리의 기초를 콘크리트로 보강했다.

 

낙동강을 준설하면서 다리 주변도 준설한 만큼 교각 기반이 약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2009년 7월 발표한 '낙동강수계 하천기본계획'에 따르면 왜관철교 지점의 준설은 4m 깊이로 이뤄졌다.

   
자연을 거스르고 4대강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정부를 훈계라도 하듯 세찬 강물줄기가 25일 새벽 붕괴된 왜관철교를 삼킬 듯 흘러가고 있다.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국토해양부는 또 2009년 10월 발표한 '낙동강 살리기 사업(2권역)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사업구간내 하상준설공사에 의해 영향이 예상돼 교량보호공을 설치해야할 교량"으로 분류했다. 교량보호공 대상교각은 2번교각에서 8번교각까지 7개로 지정했는데 이번에 붕괴된 곳은 2번교각이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와 건설사는 '호국의 다리' 교각 기반을 보강하면서 전체 9개 교각 가운데 1번 교각과 2번 교각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두 교각은 강물이 아닌 둔치 위에 있어 제외했다는 것이 시공사와 감리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날 무너진 것은 공교롭게도 2번 교각이고, 이 교각은 불어난 강물 속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미리 교각을 보수했더라면 붕괴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부 주민은 "그동안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며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을 파내는 바람에 높아진 수압을 이기지 못해 다리가 무너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촬영한 왜관철교의 붕괴전 모습. 정부와 시공사(쌍용건설)이 2번교각에 대해서는 경비절감한다며 아무런 보강조치를 하지 않은 게 확연하다.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4대강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의 박창근 관동대 교수는 "하천깊이가 4m정도 깊어졌고 이번 장맛비로 교각부근에서 와류가 발생해 교각 밑바닥에 있는 모래를 세굴하게 결국 교각이 기울 교각주변에 와류가 형성됐고 한쪽으로 교각이 기울면서 교량상판이 내려앉으면서 붕괴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원인은 더 조사해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난감한 기색이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예산 절감을 하기 위해 붕괴된 교각에 대해 보강공사를 하지 않았다"면서도 "사고원인은 더 조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6.25전쟁이란 한국 현대사와 관계가 깊은 이 다리가 하필 전쟁 발발 61주년이 되는 날 무너진 것도 묘한 일이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새벽시간이 아닌 낮시간에 붕괴되기라도 했다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호국의 다리는 1905년 경부선 개통에 맞춰 건설돼 1941년부터 인도교로 바뀌었고, 1950년 8월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막으려던 미군에 의해 일부가 폭파됐다.

이후 폭파된 구간이 연결돼 인도교로 이용되다가 1979년부터 통행이 통제됐고, 1993년 현재의 형태로 복구돼 보행 전용도로로 이용돼 왔다.

2008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다리는 한국전쟁 때 폭파된 부분만 아치형의 난간이 없는 상태다.

전쟁이 일어난지 61주년이 된 날, 그것도 전쟁 발발 시각과 비슷한 오전 4시10분께 전쟁의 상흔이 후대의 관리부실에서 무너져내렸다.

<플러스>

왜관철교는 ? 이 다리는 일제(日帝)가 1905년 군용 단선철도로 개통한 경부선 철도교이다.
그러나 1941년 11월30일 이곳에서 북쪽 100m 지점에 510m의 복선 철교를 가설함으로 인하여 이 다리는 경부간 국도로 활용하여 왔다. 1950년 6.25 동란시 북한 인민군의 남침도강을 저지키 위하여 그 해 8월3일밤 11시30분경 미 제 1기병 사단장인 '게이' 소장의 명에 따라 구 철교 제2경간과 복선 제1경간이 각각 폭파되었다.
1953년 휴전후 목교(木橋)를 가설하여 임시 도로로 활용하여 오다가 1970년 11월 왜관교가 가설되어 인도(人道)로 활용중 교각이 홍수에 유실 또는 부식 노후 등으로 1979년부터 통행이 전면 차단되었다.
칠곡군민의 오랜 숙원에 따라 총사업비 6억원을 투자하여 총연장 469m(교각 1기, 상판 63m, 트러스 도색, 난간, 포장 등)를 1991년 8월 착공하여 1993년 2월에 전면 보수하여 인도(人道)로 개통하게 되었다.
지난 2008년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406호로 지정됐다.
 

 

김용수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플러스(http://www.news-plu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김건희 Case

본문내 브라이들 교수 인터뷰에 대

??

코로나 백신의 성분을 공개하여 안

근거논문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윤리강령
서울 서초구 효령로 77길 34 현대골든텔, 14층 05호 | Tel 02-922-4011 | Fax 02-3274-0964
등록번호 서울아 01179 | 등록날짜 2010년 3월 23일 | 발행인 이철원 | 편집인 : 안중원 | 청소년보호 책임자 이철원
Copyright 2010 뉴스플러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1@news-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