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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朴 대통령과 최순실 40년 우정 영상 발굴공개
2016년 09월 30일 (금) 13:46:36 국동근 honamgdk@hanmail.net

우리나라 권력지형은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박관천 경정, 동아일보 2015년 1월)
박 경정의 말대로 최순실씨의 위상을 보여주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숨겨진 속살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핫한 인물이 최순실씨다.

최순실 게이트를 주도한 인물로 박근혜의 레임덕을 재촉하고 있는 그는 요즘 인기걸그룹 보다 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순실 씨와 박근혜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상이 발굴, 공개됐다.

뉴스타파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한복이나 각종 장신구 등을 마련해 전달했다는 사소한 의심에서부터 청와대 인사에 개입하고 정체 불명의 재단을 설립해 기업들로부터 수백 억 원의 출연금을 거둬들인 것 아니냐는 박근혜 시대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일에 쌓여있던 최씨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동안 수년 전 한겨레와 시사인에 포착된 사진 두장이 전부였다.

뉴스타파는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촬영된 영상을 최초로 발굴했다고 전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1979년 6월 10일 한양대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당시 전국에 물결 친 '새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제 1회 새마음 제전’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당시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깜짝 방문했다.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에는 최순실 씨가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영상은 대통령의 딸이자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근혜 총재와 밀착했지만 경호원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았다.

또 두 사람이 단상에서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촬영됐다.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 등 유수의 기업인들도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박근혜 총재의 근처에도 오지 못한 채 멀찌감치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당시 박근혜 총재는 27살, 최순실 씨는 23살이었다.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의 회장이 최순실 씨였다.
최 씨는 당시 단국대 대학원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는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를 창설한 뒤 스스로 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음 봉사단’ 총재를, 최순실 씨는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경향신문은 최순실씨가 ’새마음 제전’의 개회사를 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는 충, 효, 예라는 세 가지 기치를 앞세워 국민들의 정신 개조를 목표로 한 관변 조직이었다.

그 활동 범위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박정희 정권을 참석시켜 범국민 궐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새마음 병원과 새마음 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대형 스포츠 행사를 주최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당대의 거물급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줄을 서서 참석했다.

전국에 지역별 본부를 만들고 초,중,고 각급 학교별로도 조직을 만들었고  기업들도 ‘새마음 봉사단 직장봉사단’을 창설할 정도였다.

해당 영상에는 연예인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새마음 갖기 대회를 여는가 하면 버스 안내양들을 동원해 새마음 봉사단 조직을 만드는 등 대부분의 행사에 박근혜 총재가 등장했다.

박근혜 총재는 심지어 직접 “새마음의 길” 이라는 책을 써서 발간했다.그의 첫 저서였다.책이 나오자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모여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렇게 열광적인 ‘새마음 갖기 운동’의 근본인 '새마음’의 창시자는 최태민 목사였고 그 딸이 최순실 씨다.
박근혜와 최순실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뉴스타파가 발굴한 영상은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계속해서 1979년 박정희 피살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 힘겨운 상황을 맞은 인간 박근혜의 곁을 지키면서 우정은 더욱 돈독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수면으로 노출된 것은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이다. 1990년 육영 재단의 직원들과 육영수 여사 숭모회 회원들이 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씨에게 진정을 제기한다.

불만의 핵심은 최태민씨가 재단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노태우 대통령은 육영재단에 경찰 2개 중대를 파견하는 등 육영재단 ‘정상화’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 바로 최순실 씨였다. 당시 경향 신문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최(태민)씨가 87년 재단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것은 현재는 폐간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순실씨가 간여하는 등 육영이 목적인 어린이 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데서 비롯됐다.

1990년11월 17일 경향신문 “육영재단 속불은 안 꺼졌다”
 
그로부터 7년 뒤 오랜 은둔의 시기를 마치고 정치계에 입문한 박근혜 대통령 곁에는 역시 최순실 씨의 그림자가 있었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 씨가 바로 최순실 씨의 남편이었던 것.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 역시 정윤회 씨가 발탁한 인물들이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는 지방선거 유세를 하던 중 칼로 얼굴을 베이는 정치 테러를 당한다. 이 때 병실을 지켰던 사람 역시 최순실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비선에서 지휘한 것은 최순실 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였다는 얘기 역시 떠돌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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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도 않는 단독 해놓고 잘난척하

그래서 7:1은?

야이 ㅁ씨발 미친병신들아 이게 무

야이 ㅅ1발 쓰레기 매체야 7:1

추측보도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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