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전북 익산시 오산면 황금들녘.

일단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논에 들어갔다. 이내 트랙터는 수확을 시작하지 않고 논을 그대로 갈아엎기 시작했다.

수확을 보름여 앞둔 상황에서 애써 기른 벼를 갈아엎었다. 지난 추석 연휴 전 12일에 이어 추석이 끝나자 마자 또 한차례 갈아엎은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은 익산과 순창, 장수에서 피땀 흘리며 자식같이 재배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며 쌀값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쌀값 보장에 관심없는 정부를 향해 농민들은 메아리 없는 외침을 외쳐댔다.

올해 조생종 벼의 농협 종합미곡처리장(RPC) 쌀 수매 선지급금이 40㎏ 기준 3만5000원으로 지난해 수매가보다 2만원 가량 떨어졌다.

이효신 전국쌀생산자협회장은 "쌀값 통계를 보면 현재 쌀값은 1991년 수준으로 돌아갔다"며 "물가상승률 등을 적용하면 오히려 대폭 하락한 셈이다. 국내 조생종 벼는 전체 생산량의 16%에 불과한데 중만생종 벼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쌀값은 더 폭락할 것"이라고 말햇다.

생산량은 더 늘고 있다. 3년 연속 자연재해가 없고 9월 일조량이 좋아 대풍이 들면서 쌀 생산량은 연간 400만t을 웃돌았다.

자연재해가 없어 쌀 생산량이 늘면서 쌀 재고량도 200만여t(정부 175만t, 농협RPC 33만8천t)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쌀 소비량 역시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2㎏씩 줄어 지난해는 63㎏로 떨어졌다.

쌀이 넘쳐나고 있지만 국제무역기구(WTO) 내국민대우 원칙 위반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의 80∼90%를 차지하는 밥쌀용 쌀을 수입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밥쌀용 쌀 수입을 전체 수입량(41만t)의 30%로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사라지면서 밥쌀용 쌀 수입량이 12만3000톤에서 6만톤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양이 수입되고 있다.

정부는 '중장기 쌀 수급안정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공급과 수요 불균형' 대책 없이는 해마다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기껏 내놓는 대책이 "쌀값 안정을 위해 지난해 중장기 대책으로 농민들에게 벼 재배면적을 줄이도록 권고하는 것이 고작이다.

농식품부는 농민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정부 공공비축미 중 생산연도가 오래된 쌀 10만톤을 가축 사료용으로 사용하고, 밥쌀용 쌀 수입량도 2만5000톤t(9월 기준)으로 대폭 줄였다고 밝혔다.

이효신 전국쌀생산자협회장은 "쌀값 폭락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 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자연재해나 쌀 소비량 감소 등은 인위적인 정책으로 해결이 어렵다"며 "밥쌀용 쌀 수입을 줄이고, 농민들에게 피해를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쌀이 남아도는 문제를 대북 지원에 사용하는 것도 쌀값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농민단체인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부가 남북관계가 단절된 정치상황을 떠나 인도적 쌀 지원에 나서주길 기대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실은 "정부는 쌀이 남는다고 하는데 남는 쌀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에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북 인도적 쌀지원은 쌀 제고 문제해소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거양득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부가 대북 쌀지원에 미온적인 점을 감안해 대북 쌀지원 캠페인을 전개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