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아동인권 침해국 명단'을 공개한 지 3일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명단에서 제외한 것과 관련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유엔 회원국을 비롯한 해외 유력언론들은 일제히 반 사무총장의 결정에 대해 돈에 팔렸다며 유엔의 역할과 신뢰를 실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사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반 사무총장의 사우디 압박 발언에 대해 압박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반 사무총장의 역할과 자질에 대해 최근 이코노미스트가 강대국 앞에서 말못하는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평가한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다시 자질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

반 사무총장은 아동인권침해국 명단 발표를 한 지 72시간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명단에서 삭제한 것과 관련 9일(현지시간) 유엔 분담금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사우디의 압박에 무릎을 꿇은 것을 자인한 것이어서 되레 비판을 자초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다른 나라가 유엔에 분담금을 철회했을 때 다른 아이들의 인권에 미칠 영향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 사무총장은 이어 "유엔 가입국의 권력 남용은 용납할 수 없다"며 "역대 결단 중 가장 고통스럽고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고 고심끝에 내린 결정이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세계기구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역할을 포기한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

마크 터너 미국 국무부대변인은 "유엔은 국제기구로서의 권한을 수행하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조직”이라며 “지원이 끊기는 것이 두려워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유엔의 고위관계자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반 사무총장의 선택이 "흑사병과 콜레라의 사이”에 있다고 혹평했다.

유력언론들의 비판도 쏟아졌다.
로이터통신은 물론 뉴욕타임스, 러시아의 RT 등 해외 유력언론들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CNN은 "반기문 총장의 발언으로 유엔 회원국이 앞다퉈 로비활동을 벌일 수 있게됐다"며 "유엔의 신뢰에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인권단체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유엔은 국제기구로서 국제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앞장 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며 "발언 하나로 유엔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관으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압둘라 알 무알리미 사우디아라비아 유엔 대사는 반 사무총장의 발언을 반박했다.
무알라미 유엔대사는“우리는 유엔을 압박한 적이 없다”며 “유엔 사무총장을 협박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며 우리는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우리는 사실에 입각해 보고서가 사우디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오히려 사우디는 예멘 아동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엔 분담금에 대한 발언도 일절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반 사무총장은 미국 등 유엔 주요 회원국들과 사우디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면서 입지가 곤란한 상황을 맞게됐다.

유엔은 지난 2일 ‘아동인권 2015’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보고서의 아동인권 침해국 명단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72시간 만에 해당 명단에서 사우디가 빠지게 되자 국제인권단체들은 반기문 사무총장에 연대서한을 보내 명단 삭제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들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두 번째 임기 말년에 유엔의 유산을 해치려하고 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