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비선실세 국정 개입 논란을 빚은 이른바 정윤회씨와 십상시 관련 동향을 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내부문건 유출 혐의로 기소된 조웅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 전 비서관과 함께 기소된 박관천 전 경위도 대통령기록물 유출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 핵심인사들에 대한 수사결과가 모두 재판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청와대를 지나치게 의식해 법리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지난해 11월 정윤회 씨가 이른바 십상시를 통해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취지의 청와대 내부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롯됐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의혹을 전면부인했다. 청와대는 또 해당언론과 기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고소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사이에 진위논란이 확산되면서 여론이 크게 악화돼 박근혜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곤두박질쳤다. 

청와대는 국민적 의혹이 확산됐지만 청와대 참모진 인사쇄신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이를 외면한 채 읍참마속 대신 측근들을 곁에 두고 보좌를 계속하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문건 내용의 진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12월1일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철저한 의혹 규명을 주문했고 검찰의 수사 강도는 높아졌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 뿐 아니라 특수2부까지 수사에 투입하며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검찰은 신속하게 문건의 진위를 가려내고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경로까지 파악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청와대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실체가 규명될 수 있을 지 기대를 거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문건의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수사 중반인 작년 12월 중순 허위로 결론지었다.

이른바 '십상시 회동' 등 의혹을 뒷받침할 문건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들어맞지 않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의혹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맞아떨어지는 결론이 신속하게 내려졌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발언이 수사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검찰은 부실수사 논란을 뒤로한 채 문건 유출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는 고강도 수사를 실시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는 결론을 내리고 올해 1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위반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9개월 가량 이어진 1심 재판 끝에 법원은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박 경정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7건의 문건 중 유출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보이는 건 '정윤회 문건' 1건뿐이었고 그나마 박 경정의 단독 범행이라고 법원은 판시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아예 인정되지 않았다.

박 경정이 중형을 선고받은 건 문건 유출과 무관하게 별도로 기소된 수뢰 사건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2심과 3심이 남아있어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1심 판결만 놓고 보면 청와대 발언 한마디로 검찰이 결론을 그에 맞춰 수사결과를 끌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문건 유출 사건을 실제보다 과잉 해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잉 수사 논란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올해 초 검찰이 조 전 비서관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혐의입증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수사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경찰에게 청와대의 회유 압박의혹이 제기됐고 조사를 받던 경찰관이 자살하기도 했다. 

조 전 비서관은 무죄 선고 직후 법정을 나와 취재진에게 "검찰이 인정하고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다며 한번도 무슨 법을 위반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복사문서가 원본과 같이 인정되고 보호되는 기존 판례에 배치된다. 원본만 대통령기록물이어서 30년 동안 비공개되고 복사본이나 추가 출력본은 얼마든지 유출돼도 괜찮다는 논리인데 입법취지와 법 현실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제3자의 사생활이나 탈세 등 범죄정보가 포함된 문건의 전달까지 정당한 직무상 행위라는 무죄 선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워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