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고위급접촉 합의 이후 사과를 끌어냈다며 박근혜 정부의 단호한 대응과 확고하고 일관된 대북정책이 성과를 냈다며 자축분위기에 빠졌던 정부가 '신중'과 '겸손' 모드로 황급히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때 시작된 남북관계 악화가 현 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전환적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박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정책이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답답하고 초조한 상황이 지속되다 북한 측 유감 표명를 아전인수식으로 사과를 받아냈다고 해석하며 흥분하다 자칫 어렵게 마련된 남북관계를 그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27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원회를 열고 남북고위급접촉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후속조치 추진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추석계기 남북이산가족 상봉 추진방안과 일정을 우선 당면 과제로 협의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는 향후 후속조치를 우선 순위에 따라 차분하게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산가족상봉, 당국회담에 남북정상회담 전망까지 나오는 등 남북관계 개선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민 대변인은 "협상은 끝난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하나하나 공개하는 것은 향후 협상에 도움이 안되는 만큼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 대변인은 "대통령 말씀을 확인하는 게 아니다, 원론적으로 당연한 말로 겸손하라는 뜻"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자화자찬하며 자축분위기에 빠져 회담 뒷얘기 등이 나오는 등 들뜬 분위기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보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북한 측 반응에 따라 이번 합의가 언제든 깨질 수 있고 북한의 협조가 없으면 남북관계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정부당국 관계자는 "민 대변인의 발언에는 북한 측을 민감하게 자극할 경우 극적으로 이뤄 놓은 합의가 산통날 수도 있다는 청와대 내의 우려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대를 나타내며 흥분된 분위기에서 신중과 겸손 모드로 전환한 것이 역력하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10월10일 이후에야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10월10일 당 창건일을 맞아 로켓과학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거리로켓 발사 가능성이 관측되는 상황에서 장거리로켓을 발사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제재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 정부가 이에 동조할 가능성이 커 국제사회와 갈등은 물론 남북관계도 급랭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북한이 10월10일 로켓을 발사할 경우 예견되는 국제사회와 갈등과는 별개로 우리 정부가 남북고위급 합의 후속조치를 냉정하고 차분하게 관리, 이행해 나가는 것이 애써 마련된 신뢰와 화해의 계기를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김양건 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이번 합의 정신에 기초해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는 지난 22~24일 판문점 남북고위급 회담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함께 나온 당사자다.

그는 27일 조선중앙TV와의 일문일답 보도 형식으로 “북과 남이 원인 모를 사건으로 요동치는 사태에 말려들어 정세를 악화시키고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비서가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폭발과 관련 '원인 모를 사건'이라고 한 데 대해 일부에선 유감을 표명한 남북 고위급 접촉 공동보도문에 대해 우리측의 사과 표명 해석에 반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는 그러면서도 "위험천만한 위기 상황에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획기적 국면을 열어놓은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접촉이 위급한 불을 끄기 위한 것으로만 돼선 큰 의미가 없다. 협상을 통해 불신을 해소하고 대담하게 관계 개선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전개될 이산가족 남북당국회담 민간교류 협력 등 남북관계에서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나올 수 있음을 보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에서 향후 선제적으로 주도권을 잡아나가려는 의도도 깔렸다는 관측이다.

황 총정치국장도 지난 25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벌일 경우,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양건 황병서 두사람의 발언을 보면 우리 측의 지뢰도발 사과 해석에 자신들의 지뢰도발이 아닌 원인모를 지뢰폭발로 우리 측 병사가 부상한데 대해 인간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와관련 정부 당국자는 황 총정치국장과 김 비서의 발언에 대해 "북한 내부용"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협상 당사자들이 연이어 '우리가 사과를 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시인과 사과를 했다는 것"이라며 사과한 것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