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가 정상인처럼 오래 살 수 있나, 사망자 유족에게는 정상인의 70%정도까지만 보상해줄 수 있다."

LIG손해보험이 자사 보험가입자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장애인 보상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피해자 측에 보낸 답변이다.

LIG측은 법원 진술에서도 "숨진 장애자가 휠체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벗어난 지점에서 충격당했다" 등의 진술로 일관하고 있어 유족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고 있다.

지난 2월 여의도 이룸센터 앞 횡단보도 상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 중 차량에 치어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이틀만에 숨진 한 장애인단체 간부인 故(고) 구 아무개 씨의 유족과 동료들이 5개월 넘게 장애인에 대한 보험사의 차별적 언행에 또한번 고통을 겪고 있다.

5개월 넘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법정을 오가는 사이 계절도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바뀌었다. 그사이 LIG손해보험은 이름도 갈아탔다. 

LIG손해보험은 지난 6월24일 KB국민지주(회장 윤종규) 손자회사로 편입돼 사명이 지난 6월 KB손해보험으로 이름이 바뀌고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정상인에 한정된 것이다.

지난 2월 전국 400만 장애인의 희망인 활동가가 쓰러졌다.

엄동설한에 차디찬 겨울바람이 불던 겨울 밤, 구씨가 여의도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업무를 끝내고 길을 건너다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낸 차량은 당시 음주상태였다고 한다.

구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의식불명의 뇌사상태였다고 한다. 가족과 활동가, 장애인들의 회복을 바라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고인은 국제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낸 뒤 그래도 편한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장애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불의의 사고에 수많은 동료들은 여전히 고인의 죽음을 애탄하며 그를 기리기 위한 운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유족과 동료들은 자립을 위해 장애인 입장에서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활동을 하면서도 학업에 열정적이었다.

고인은 '자립 생활을 지향하는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의 열정과 뜻을 기려 지난 2월 13일, 서울의 한 대학원(사회복지학과)은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석사학위 논문 ‘자립생활을 지향하는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대한 연구’를 기념하는 ‘장애인 운동가 논문유작발표회’로 개최했다.

또한 이 땅의 장애해방과 자립생활 정착을 위해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은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구근호 동지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유가족 지원 및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가해 운전자와 KB손해보험 모두 비인간적인 반장애인 의식을 보였었다고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전했다.

LIG 손해보험 김병헌 CEO는 경영철학으로 고객을 제일 중요시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지난 6월 KB금융으로 편입된 뒤에도 이는 고객선호도 1위를 유지하는 최대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변하지 않는 가치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해서는 적어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장애인들의 목소리다.

가해 운전자는 사고 이후 병원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보험 처리를 했으니 보험회사 하고 얘기하라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KB손해보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장애인들에게 희망과도 같은 존재를 빼앗아가고도 가해운전자가 가입한 보험회사는 장애인을 인간존엄마저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인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와 전국장애인 단체는 "장애인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며 장애인들의 가슴에 못을 작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손해배상 소송이 열린 법정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모여들어 법정을 가득 채웠다.

재판이 끝나자 고인의 부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동료들의 관심과 격려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눈물이었다.

동시에 KB손해보험, 나아가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싸워나가겠다는 다짐의 눈물이었다.

이날 법정에서 KB손해보험 측은 고인이 차에 치인 위치가 횡단보도상이냐, 아니냐를 놓고 양측 변호인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횡단보도선에서 벗어난 위치였다는 주장이다.

KB손해보험은 또 고인이 휠체어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고 KB손해보험 측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구씨 측은 안전벨트를 맬 수 없는 신체적 특징을 무시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 뿐만 아니다.

KB손해보험은 고인이 장애우 권익과 자립을 위해 활동해온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 장애인단체는 LIG손해보험사(가해차량 가입 보험사, 현 KB손해보험사)은 고인의 유족 측에 보낸 '청구취지에 대한 답변서' 에서 "중증장애인의 권익옹호와 자립생활 운동에 십 수 년 간 솔선하고 희생했던 그의 발자취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내용들로 도배 되다시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지난 3월 고인의 유족들은 법무법인을 선임해 LIG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유족 측은 2008년부터 모 장애인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며 받은 급여, 동료상담가 및 장애인권강사로 활동하며 받은 강사비, ‘경기력향상연금’ 등을 근거로 배상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LIG 측이 내놓은 답변은 '모든 청구를 기각한다'였다.

KB손해보험은 "망인이 지체장애 1급의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점에 비추어 원고들의 주장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중증장애인이 어떻게 센터의 간부가 될 수 있는지, 뇌성마비 장애인이 어떻게 그렇게 높은 급여와 강사비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 모두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KB측은 또 "망인은 지체장애 1급 1호로 등록되어 있는 뇌성마비장애인으로, 그 여명이 정상인보다 훨씬 단축될 것으로 보이는바(여명 단축 70% 정도), 단축된 여명까지만 경기력향상연금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괴한 논리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짧은 수명까지 언급하며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짓밟았다는 게 장애인단체의 주장이다.

장애인단체는 LIG 측의 변호사에게 묻는다"며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모든 국민'의 범위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는가? 변호사의 사명인 '기본적 인권' 옹호의 대상에 장애인의 '인권'은 없다고 믿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아무리 수임료와 성공보수금이라는 法그릇으로 먹고 사는 변호사라지만 아무리 급했기로서니 대한민국 헌법과 변호사 윤리강령, 윤리규칙을 송두리째 망각하고 장애인을 끝내 차별하고 비하하는 법리를 내세워 배상금을 후려칠 생각을 하느냐"고 변호사가 양심을 상실하고 돈에 눈먼 변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애인단체는 또 장애인을 차별하는, 장애인을 위협하는, 장애인 수명을 멋대로 단축하는 LIG는 대한민국 사회에 석고대죄 해야한다며 누구보다도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나쁜 변호사'를 선임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쁜 소송’을 진행하려 했던 '나쁜 회사'가 바로 'LIG손해보험사'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인간존중'의 경영으로, '온 국민의 희망파트너'라 자부하는 LIG 김병헌 사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녕 LIG가 존중해야할 '인간'에 장애인은 예외인가"라고 물었다.

KB손해보험 홍보팀 한 관계자는 회사 측의 공식입장을 묻는  "그런 것을 왜 물어보느냐, 그것(장애인)들 때문에 (골치아프고 짜증나는데) 맘대로 해라, 대답할 가치가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두차례나 입장을 물었지만 갈수록 불쾌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에게 더이상의 취재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저열한 인식만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그들에 대한 취재마저 사치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