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며 소설가 등을 꿈꾸는 많은 문학도들의 대표적인 문학 수업법으로 필사를 들고 있다.

실제로 나의 이십대 초반 문학 수업 시절, 선배들로부터 구전되어 온 필사 문학 수업의 전범으로 황석영 등을 비롯한 지금으로서는 이 나라 문학사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많은 이들이 거론되고는 했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방대한 저작물에 보노라면 19세기말의 글공장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나온다. 당시 소설은 오늘날의 막장 드라마 못지 않게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고, 빅토르 위고나 스탕달, 에밀 졸라류와는 또다른 통속의 영역에서 대중들의 소비를 위한 소설이 양산되었다.

그 소설들이 바로 그 글 공장에서 생산되었는데, 그 작품들의 집필 과정은 우리의 70년대에 평화시장 3층 음습하고 먼지 가득한 봉제 공장에서 미싱사와 재단사, 시다들이 철야를 해가며 옷을 만드는 공정에 비유해도 무방하다.

그 글 공장에서의 글 작업은 대부분 기성 작품들을 필사 윤문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맹에서 갓 벗어나기 시작한 유럽의 대중 사회는 자신들의 지적 감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문자 독해력)을 마음껏 누리려 했고, 그 필사 윤문작들이 그 욕망의 일정 공간을 채워 주었다.

바로 그 욕망이 근대 유럽 Novel의 전성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렇게 루소나 빅토르 위고류의 대가들 작품이 대중과 사회에 끼친 영향 못지 않게 글 공장에서 밤 새워 원고지 한 장이라도 더 써서 돈을 벌어야 했던 무명의 필사 윤문 작가들의 역할 결코 무시할 수 없다.

80년대 중후반 한 여성 작가를 동기며 선후배들이 입에 올리고는 했다. 그이가 신경숙. 그이를 어느 정도 안다는 두 살 위 동기도 있었다. 당시 흔히 듣던 이야기가 바로 신경숙은 누구 작품을 여러 번 필사하며 문학 수업을 했다는 거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작가의 꿈을 키워 가며 자양분이 되어 줄 작품을 골라 밤새워 필사하는 문학 수업. 나도 그렇게 열심히 해보리라 마음만 먹고 게으르거나, 텍스트를 펼쳐 놓는 순간 왠지 쫀심이 상해 그냥 덮어 버리고 술 한 잔 더하고 잠들어 버리고는 했다.

그리고 나의 그 결과가 여전히 글쟁이의 꿈을 꾸는, 아니, 누구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내 방식의 글쓰기를 하며,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인생을 채워 보려 지금도 이러고 있다.

최근의 신경숙 표절 논란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그 문학 수업법에서 비롯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습작 단계에서 자기만의 사유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는 것, 그게 어디 그리 만만한 것인가!

기성 작가 시인도 새 창작의 백지 앞에서 머리 속이 창백해지고는 할 텐데... 그럼에도 나는 문학도들에게 수없이 많은 백지 상태의 머리 속을 경험해 보라고 권할 수 있다면 권하고 싶다. 손쉽게 남의 시, 남의 소설을 펼쳐들고 베껴 적는 일, 지양했으면 한다.

신경숙은 오랜 습작 과정에서 내면화한 문학 수업 방법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이 말대로 모국어의 대지를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이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젊은날 그이에게 닥쳐온 무수한 그럴 듯한 텍스트들, 그이의 무의식은 그것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 독자들은 그렇게 신경숙의 입에서 잘 씹어 삭힌 언어의 부드러움과 달콤함에 취해, 저 거칠고 광활하며 역동적인 문학의 세계를 직접 찾아 구하는 법을 잃어버렸고.

<길도형. 도서출판 장수하늘소 대표.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