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원대를 기록하는 등 고속성장한 중견가전업체 '모뉴엘'의 기막힌 뇌물제공 수법이 드러났다.

벤처신화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모뉴엘이 뇌물 수법으로 또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모뉴엘의 벤처신화는 기발한 뇌물 기술로 천문학적인 사기대출로 쌓은 모래성에 다름아니었다.

모뉴엘의 대출사기ㆍ금품로비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는 모뉴엘 박홍석(53) 대표와 신모(50) 부사장, 강모(43) 재무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들은 1조2000억원대 허위 수출입신고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모뉴엘에서 재무이사로 일하다가 화물운송 알선업체를차린 조모(47)씨도 사기대출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조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표 등은 2007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홈시어터 컴퓨터(HTPC) 가격을 부풀려 허위 수출하고 수출대금 채권을 판매하는 등의 수법으로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 400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모뉴엘은 채권 상환기한이 다가오면 또다른 허위수출을 꾸며 돌려막기를 했다.

모뉴엘에 물린 은행들이 아직 받지 못한 대출금은 5500억원에 이른다. 모뉴엘은 허위 수출입거래를 전부 매출과 순이익에 포함시켜 2조7000억원 상당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모뉴엘은 1대당 시중가격 8000원∼2만원인 HTPC를 200만∼300만원까지 가격을 부풀려 수출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위해 실사를 나오면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위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무역보험공사(옛 수출보험공사) 등 정부유관기관과 공무원들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도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다는 게 검찰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모뉴엘은 KT 자회사인 KT ENS를 통해 허위수출을 하다가 여신규모가 점점 늘어나자 직접 허위수출에 나섰다. 기존 거래규모를 유지하고 무역보험 및 수출금융 한도를 늘리기 위해 무역보험공사ㆍ한국수출입은행 등 유관기관에는 전방위로 금품 로비공세를 펼쳤다.

조계륭(61ㆍ구속기소)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은 퇴직 후에도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받아가며 ‘로비스트’ 노릇을 했다.

모뉴엘은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불법자금을 감추려고 세무공무원에게도 손길을 뻗쳐 뇌물로 엮었다.

검찰은 작년 10월 미국으로 도주한 전 무역보험공사 영업총괄부장 정모(48ㆍ기소중지)씨가 모뉴엘과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미국 사법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정씨는 2009년 모뉴엘 담당 팀장으로 일하면서 박 대표와 친분을 쌓았고 2013년부터 1억18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표가 이들에게 뿌린 돈은 총 8억600만원에 달한다.

강남 유흥주점에서 접대하면서 하룻밤에 1200만원을 쓰기도 했고, 금품로비에는 500만∼1000만원짜리 기프트카드(선불카드)가 주로 쓰였다.

돈을 담는 용기로는 담뱃갑과 과자·와인·티슈 상자를 이용해 기프트카드나 5만원권 현금을 채워서 건넸다.

뇌물공세는 2012년을 전후로 집중됐고 효험도 상당했다.

무역보험공사는 모뉴엘에 대해 보험한도를 2011년 8800만달러(약 952억원)에서 2013년 2억8700만달러(약 3106억원)로 크게 책정했다.

수출입은행도 여신한도를 2011년 40억원에서 지난해 1131억원까지 늘려줬다.

검찰 관계자는 “국책 금융기관 일부 임직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인해 제도의 근본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관계기관의 제도 개선과 함게 유사한 무역금융 비리를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모뉴엘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