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탄생한 민주헌법 정신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해 헌법정신에 오점을 남기게됐다.

19일 헌법재판소(헌재소장 박한철)는 정부가 낸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사건에 대해 법무부가 낸 정당해산심판청구는 적법하다며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이와함께 통합진보당 소속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들도 의원직을 박탈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이날 판결 주문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며 9명의 재판관 중 8명이 해산에 찬성했다며 정당해산결정 요건인 헌재재판관 2/3를 충족한다며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고 주문을 낭독했다.

민주헌법 정신에 입각해 정당해산에 반대한 재판관은 김이수 재판관이 유일했다.

이날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공중분해되는 위기를 맞게됐다. 통진당 소속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5명도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민주사회에서 정당해산을 결정한 것은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직접적인 토론장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무부가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박한철 소장은 "통진당이 전민항쟁과 저항권 행사 등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다"며 "이는 목적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박 소장은 이어 "북한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비춰볼 때 추상적 위험에 그친다고 볼 수 없다"며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당 해산의 취지를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소속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부득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작년 11월 5일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반한다며 정당활동금지 가처분과 함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와 통진당은 지난달 25일까지 18차례에 걸친 공개변론을 거치며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였다.

그동안 법무부는 2천907건, 통진당은 908건의 서면 증거를 각각 제출했다. 이 사건 각종 기록은 A4 용지로 약 17만쪽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구성을 감안할 때 진보진영에서는 해산 결정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한 진보인사는 "헌법재판소가 구성원이 대부분 보수성향으로 구성돼 최소한 2/3 정도로 해산결정이 날 것으로 봤다"고 이미 예상한대로 재판관들의 주관에 따라 정당이 좌우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은 헌재의 결정에 논란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비판적 의견이 게재되고 있다.

야권과 진보단체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민주헌법 정신을 훼손하게됐다며 민주주의 후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통합진보당 노선에 반대하며 결별을 선언했던 정의당은 국민의 뜻과 선택, 선거에 의해서 결정돼야 할 정당의 운명을 박근혜 정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고 민주헌법에 의해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손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했다.

천호선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의 해산주장 논리는 민주화운동을 반국가활동으로 몰아 탄압했던 70,80년대 공안사건 공소장의 억지주장과 수준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도 "정당은 오직 주권자인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며 "정의당은 이석기 의원의 일탈과 통진당의 노선에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결별했지만, 헌재에 의한 해산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우려도 진보당내에서는 나오고 있다.

법학도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지난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비판세력을 배척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며 분명한 반대입장을 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반대의견은 처음이다.

서울법대 출신인 문 위원장은 당시 "오늘은 세계인권의 날"이라며 "어제 시민사회, 종교계 원로들을 만나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해산 반대 입장에 설 것을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이어 "저는 진보당의 강령에 찬성하지 않고 이석기 의원의 발언도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정당해산 결정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이분법 진영논리에 매몰돼 반대하고 비판하는 세력을 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계몽사상가 볼테르도 인용했다. 문 위원장은 "당신의 의견과 다르지만 반대를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의미심장한 지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