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몇 달 뒤, 오만하고 철딱서니 없는 정치인은 유가족은 조용히 좀 있으라며 아픈 이들의 생채기를 덧나게 했고, 누군가는 "먹고 살기 바쁘다"며, 심지어는 "세월호 유가족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느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사람들보다 더 대우를 해줘야하느냐며 그만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역만리에서 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거리로 내려와 약한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교황은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잡아주고 위로하며 우리사회에서 찾기힘든 참 리더십을 보여줬다.

교황에게 위로받은 국민들. 교황이 떠난 지 이틀밖에 안됐지만 허전함은 무척 크다. 상처가 워낙 컸던 만큼 교황에게 큰 위로를 받았지만 교황의 빈자리가 크다.

"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서 중립 지킬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떠난 빈자리가 워낙 커 시민들의 가슴이 뻥 뚫린 것같다. 하지만 교황이 남기고 간 한마디 한마디와 낮게 임하는 교황의 몸소 실천은 국민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았다.

교황은 귀국 기내 기자회견에서도 세월호 리본을 착용했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가 바로 그 한마디로 설명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제안에 대해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실제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다.

귀국 길 기자회견에서도 세월호 리본을 왼쪽 가슴에 그대로 달고 있었다.

해외 유력언론도 교황의 세월호 유족의 호소를 들어주는 장면을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했다.
AP통신은 교황 방한을 정리하는 기사에서 16일 광화문광장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하던 교황이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족의 손을 잡고 얘기를 들어준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를 만났을 때도 "인간적인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며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인 이유로 그렇게 한다'고 여기겠지만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민은 침략의 치욕을 당하고 전쟁을 경험한 민족이지만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았다"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이분들이 침략으로 끌려가 이용당했지만,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이용당했고 노예가 됐다"면서 "이들이 이처럼 큰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품위를 잃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며 경외감을 표시했다.

남북문제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단으로 많은 이산가족이 서로 상봉하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라면서도 남북한이 같은 언어를 쓰는 '한형제'인만큼 희망이 있다는 기대를 표했다.

그리고 남북의 하나 됨을 위해 다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하고 예정에 없던 침묵의 기도를 올렸다.

교황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중국과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교황은 "중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하다. 내일이라도 가겠다'"라며 "교황청은 중국
국민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교의 자유를 원할 뿐 다른 어떤 조건도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방한길에 처음으로 중국 영공을 지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인에 대한 축복 메시지를 전했다.

17일에도 중국, 북한 등 아시아 지역의 교황청 미수교 국가와 대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교황은 자신에게 쏠리는 대중적 관심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섰다.

"인기라는 것은 기껏해야 2∼3년밖에 가지 않는다"면서 "거만해지지 않기위해 내적으로 내 죄와 잘못을 돌이켜 본다"고 말했다.

교황은 "교황청 내에서 일하고 휴식하고 수다도 떨며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면서 "주변에서 교황은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자신은 '혼자 타겠으니 당신 일을 하라'고 말하는데 이게 사실 정상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