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민주노조 등 안팎으로 사퇴압박에도 버티기로 맞서온 이석채 KT 회장이 결국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 회장은 3일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하고 전 임직원에게 메일을 통해 "직원들의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아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왕 앞의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임 CEO가 결정될 때까지 남은 과제를 처리하고 후임 CEO가 새로운 환경에서 KT를 이끌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의혹들이 해소될 수 있다면 나의 연봉도 숨김없이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 회장은 KT가 투명하고 혁신적인 회사로 거듭나게 임직원과 함께 추진해왔고 그 결과 재벌이 아닌 기업도 치열한 전장에서 당당히 겨뤄 성공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는 "IT시스템의 혁신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글로벌 사업도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닦던 때에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돼 회장으로서 참담한 마음과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우리의 사업과 인력구조로는 IT컨버전스 위주로 변화된 환경과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경쟁사 대비 1조 5000억원 정도 인건비가 소요되고 있어 1조까지 줄인다는 개선을 올해 안에 이뤄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새노조, 시민단체로부터 경영상 전횡과 비리 의혹으로 퇴진압력을 받아왔고 올들어서는 청와대 등 정치권의 사퇴압박도 이어졌지만 꿈쩍하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했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보호막을 치려한다는 의심도 받았다.
이처럼 버티던 이 회장의 사퇴 결정에는 두차례에 걸친 검찰의 압수수색이 결정적이었다. 이 회장은 1차 압수수색때 만해도 아프리카 출장을 가는 등 사퇴의사가 없었지만 2차 합수수색이 이뤄지면서 끝내 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양호산 부장검사)는 지난달 22일 경기도 분당의 KT본사와 서울 광화문·서초 사옥, 이 회장 자택 등 16곳을 압수수색해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M&A 관련 내부 보고서 등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KT는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따라 지난달 31일 밤 11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KT의 광화문, 분당, 서초·사옥과 임직원 5∼6명의 주거지 등 8곳에 대해 2차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 회장은 회사 인수합병과 신사업 추진 등에서 사업성 부재라는 내부보고서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추진하고 KT지역본부 사옥을 헐값매각해 회사에 1000억 가까운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새누리당 등 여권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거액 비자금 조성의혹이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권 교체되면 교체 1순위로 꼽히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며 이 회장을 부담스럽게 했다.

결국 참여연대는 지난 2월 KT가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해 수백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이 회장을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10월 초에는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이 회장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KT 사옥 39곳을 매각하면서 사측에 860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며 추가 고발장도 접수됐다.

하지만 이 회장은 국정감사 증인출석을 앞두고 아프리카로 출국해 도피성 출국 의혹을 샀다.

아프리카 출장 중인 지난 달 29일(현지시간) 아프리카 르완다 키갈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정면 돌파란 단어를 모른다"면서도 "내 할 일 할 것이다.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 심겠다는 그런 것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회장직 고수 의사를 굽히지 않았으나 계속된 검찰 압수수색과 비리 의혹이 추가적으로 터지면서 더이상 버티기가 어렵게 됐다.

검찰의 2차 수색에 이어 국가적 자산인 무궁화호 불법 매각 등으로 형사 처벌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더는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 일각에서도 비리 의혹이 진동하고 수많은 직원들에게 칼을 들이댄 회장 하나로 더이상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밭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KT 관계자는 "이 회장이 검찰의 압수수색 속에서도 끝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이 강했다"며 "그러나 정치권과 검찰에서 비리 의혹이 자꾸 불거져 나오면서 주변마저 힘들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더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