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터무니없는 발언으로 능멸하고,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해서 전직 대통령 유족들이 형사고소를 했는데 검찰은 넉 달이 지나도록 피고소인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설사 예우는 관두더라도 일반 고소사건과 똑같이 처리하더라도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일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는 사상 첫 1인 시위를 벌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들이 차명계좌 발언으로 전직대통령을 능멸하고 부관참시했다며 검찰에 고소한 조현오 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를 미루고 있는 서초동 검찰청사앞에서 사상 초유의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21일), 장하진 전 여성부장관 조기숙 전청와대 홍보수석,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22일),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23일), 황인성(24일) 전 시민사회수석까지.

30년만에 닥친 최악의 한파마저 이들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에겐 비분강개마저 느껴졌다. 당시 이들이 왜 나섰는 지 재구성했다.

그는 '밤새 잠을 못 이뤘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87년 6월항쟁 때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길거리에서 연좌농성하던 생각이 난다. 역사가 이렇게 발전하기 어려운 것인가"라고 답했다.

문 이사장은 검찰이 조현오 청장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권 눈치보기’와 ‘검찰이 경찰청장을 법 밖에 있는 특권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문 이사장은 이어 “조현오 청장은 봉하마을을 방문하거나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밝힌 적도 없다(조현오 청장은 두차례나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음)”며 “이제는 조 청장이 사과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 청장이 인간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했다면 조금은 누그러졌겠지만 이제는 조금의 용서할 여지마저 사라졌다는 것.

이날은 마침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관련 2차 공판이 열리던 날이어서 한 전총리와 문이사장이 서로 격려했다. 

이날, 1인시위 현장에 2차 공판을 앞둔 한명숙 전 이사장이 법원으로 가는 길에 들렀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고 한 전 이사장은 "추운 날씨에 고생 많다"며 문 이사장은 "공판을 앞두고 고생 많다"라고 서로 격려했다.

윤승용 전 홍보수석은 "참여정부 초기 검찰개혁을 추진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시간에 눈을 부릅뜨고 대들던 젊은 검사들. 대통령 앞에서도 할말 다하던 그 패기 넘치던 소신검사들 다 어딜 갔는가? 어디서 뭐하고 자빠져 있느냐?고 분개했다.

윤 전 수석은 최근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타조가 덤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었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일컫는 ‘장두노미(藏頭露尾)’를 선정한 것을 거론하며, “요즘 이명박 정부나 검찰이 하는 짓이 딱 이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검찰 출입기자로 검찰청사를 내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던 그가 이처럼 검찰을 향해 강도높게 비판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식있는 사회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장관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나왔다. 이번 시위가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다면 검찰이 소환할때까지 계속해서 나오겠다"며 "검찰이 조현오 청장을 소환하지 않으면 문재인 변호사처럼 나도 거적깔고 눕겠다"고 했다. 생애 처음 1인 시위를 했다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일부러 얇은 옷을 입었다. 좀 추운데서 고생해야 (노 전대통령에게) 덜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부위원장은 "주군의 명예가 더럽혀지면 장수가 목숨을 건다"며 "대통령을 부관참시하고 뒤에서 웃고있을 그들을 생각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 청장의 망언을 조장하고 방치하는 현 대통령과 검찰이 무슨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해 체감온도가 -5도까지 내려간 23일 “노무현 대통령님 생각만 하면 이 정도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일(황인성 전 시민사회수석)이 더 걱정”이라며 추위에 자신의 입술이 트면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이 전 장관은 "조현오 청장을 수사하지 않는 검찰의 직무유기에 대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의사표시를 해야한다"고 했다. 환경운동가 출신 장관답게 그는 지난해 국회 앞에서 4대강 사업 중단 촉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4일.1980년 군부쿠데타가 일어났던 엄동설한(-16.2도) 이후  30년만에 가장 추운 날. 서초골은 서울시내에서도 특히 추운 곳이다.

황인성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시민주권 공동대표·사진 왼쪽)은 추위에 아랑곳없이 세시간을 그자리를 지켰다. 김형주 전 의원(시민주권 사무총장·사진 오른쪽)은 피켓을 들고 동참했다.

황 전 수석은 "몸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자리다. 추우니깐 더 정신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하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면 사회질서나 통합이 같이 무너진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대표자가 명백히 실정법을 어겼는데 이를 방기하는 것은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황 전 수석은 이어 "전직 대통령에 대해 허위 망언을 한 사람이 버젓이 경찰청장에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며 "검찰이 이 상황을 더 방기한다면 정말 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여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들이 엄동설한 1인시위로 나서게 만들엇을까.

무엇보다 법 집행의 최후보루인 검찰의 직무유기가 계속되며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친 노무현 인사나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박연차 사건과 촛불시위, 쌍용차파업, PD수첩, 강기갑 의원 항의사건 때 보여줬던 신속하고 결연했던 검찰의 수사의지나 기개는 종적을 감춘 상황이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과 맞짱토론 및 소환조사까지 했던 검찰의 모습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형사소송법(제257조)은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두손을 놓고 있다.

노무현 재단과 유족은 지난 8월 18일 서울중앙지검에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을 한 조 청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형사소송법 시한을 다 채우고도 한달 이상 넘긴 것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3월31일 서울경찰청 강당에서 서울청 소속 팀장급(경위) 이상 464명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뭐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뭐 때문에 뛰어내렸습니까. 뛰어내린 바로 전날 계좌가 발견됐지 않습니까. 차명계좌가.."라고 말했다.

검찰이 조 청장에 대한 수사를 특별히 미뤄야하거나 봐주어야할 아무런 상황변화도 없는 상황이다. 조 청장은 지난 8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가 무릎이라도 꿇고 싶다.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가 봉하마을을 찾지않아 청문회만 넘겨보자는 멘트에 불과했다는 의심을 낳고 있다.

해를 넘긴다면 조현오 청장 소환조사를 시간끌기로 한없이 미룬다면 권력눈치보기 비판을 넘어 군부독재 시절 들어야했던 예전의 정치검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다시 쓰게 될 지 모른다.

검찰이 노 전대통령의 유족이 전직 대통령 명예훼손 고소사건을 어물쩍 해를 넘겨가며 조현오 경찰청장 감싸기를 한다면 분노는 더욱 커져 검찰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노무현재단'은 일단 검찰청 앞 1인시위는 일단락하고 검찰이 조현호 청장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계속해서 강력 촉구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조현호 청장 수사를 미룬다면, 더 강력한 대응을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노무현 재단측은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아왔지만 이제는 더이상 인내의 한계를 넘어 결연한 의지가 배어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검찰이 조현오 청장을 소환하지 않으면 거적깔고 눕겠다"고 밝혓고 조기숙 전 홍보수석도 거적을 깔고 눕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 세계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상 초유의 거적을 깔고 눕는 상황을 전국민에게 보여주는 길을 택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