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분홍 침대                         

                                                                                              조영선 

아이들이 두고 간 놀이터

더디게 어두워지는 물체들과 나 뒤섞일 때

뜨거운 숨결 사물들을 관통하고 있다

긴 머리를 애인의 어깨에 편안히 기대앉은 망사 스타킹

사내의 목에 매달려 흔들리는 늙은 티셔츠

뒤돌아 앉아 술 마시는 병든 넥타이와

반쯤 남은 생수병 베고 명상에 든 더러운 운동화

문자메시지 전송하며 재잘대는 책가방들

앙탈부리는 암 고양이들 꽃분홍 침대를 펼치고 있다.

서로의 빈틈을 바짝 좁히려는 참 맑은 슬픔들 껴안고

그네와 미끄럼틀, 정글짐이 후끈한 몸 누이려는 불안한 하루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 한 여름밤

아득한 별자리에, 지금은 목하열애 중

- 시집 <슛> 中(좋은책터 굿글로벌刊)에서 -

시인 조영순은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새들은 난간에 기대 선다>를 처녀작을 최근 두번째 시집 <숲>을 냈다. 중구 신당동에서 카페 <시인의 마을>을 운영 중이다.